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아 Dec 03. 2020

교정 안 하실래요?




 거울을 보고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면 약지 손톱만한 크기에 다른 치아보다 한참 앞쪽으로 마중 나온 두 앞니가 보인다. 입술을 꾹 다물지 않으면 완벽히 가려지지 않는 나의 앞니들. 흔히 ‘토끼 이빨’이라는, 꽤 귀여운 표현으로 불리는 이 존재는 오랜 시간 나의 콤플렉스였다.
 
 앞니가 본격적으로 거슬리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학급엔 삐뚤빼뚤한 치열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 치열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학급 틈에서 내 거대 앞니는 수많은 부정교합 사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자 교정을 시작하는 애들이 생겨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가지각색이던 친구들의 치열은 몇 년 후 가지런하게 정돈되었다. 교정기 대열에 합류하는 인원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렇게 성인이 되자 튀어나온 내 앞니는 정돈된 치열 인구들 사이, 눈에 띄는 부정교합 사례가 되고 말았다.
 
 계속 누르다 보면 언젠가 들어가지 않을까. 틈만 나면 앞니를 꾹꾹 눌러댔지만 소용 있을 리가 없었다. 거울 앞에서 앞니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들은 내 속에서 존재감을 키워갔다. 앞니의 크기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와 겁나 크다. 발사될 것 같아. 거울을 볼 때마다 불평을 늘어놨다.
 
 교정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막상 치과에서 진료라도 받아볼까 싶다가도 한 편으론 망설이게 됐다. 밥 먹을 때 불편한 것도 없고 충치 한 번 난 적 없는 이 앞니를 2~300만 원이나 들여서 뒤로 조금 밀면 달라지는 게 뭘까. 하고 싶은 것도, 안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애매한 마음으로 시간이 흘렀다. 길었던 고민을 정리해 준 건 다름 아닌 치과였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8시부터 이어진 4시간의 검진은 위장 수면내시경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는가 했다. 카운터에서 '무료 스케일링' 쿠폰을 줬다. 공짜는 마다할 이유가 없지. 곧바로 치과로 향했다. 딱딱한 의자에 누워 천장을 멀뚱히 보고 있으려니 담당 치위생사가 내 입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손님, 앞니가 부정 교합이시네요."
"아, 네.."
"혹시 교정 생각 안 해보셨나요?”
“글쎄요.. 비싸기도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상담 받아보신 적은 없으시고요."
"어.. 네"
"저도 교정을 한 건데, 하기 전후로 삶의 질이 정말 달라져요."
 


 
 인트로까지는 꽤 흥미로웠다. 혹시 교정 영업 대한 커미션이 있는 걸까, 입을 벌린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마취도 완전히 풀리지 않아 다소 미적지근한 내 반응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교정의 장점을 열거했다. '교정 찬양'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와중, 마취의 기운을 한 번에 달아나게 만든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손님, 결혼하실 거죠? 웨딩 사진 평생 남는 건데 예쁘게 찍어야 하잖아요. 지금도 웃을 때 앞니 너무 거슬리실 것 같은데. 요새 보정 안 되는 거 없다지만 치아라는 게 뭐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정되겠어요. 찍으면서 활짝 웃지도 못하고 신경 쓰이고. 결혼하려면 교정하셔야 해요!"
 


 
 나는 단 한 번도 내 앞니가 결혼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텅텅 빈 통장 잔고가 문제가 될 거라면 또 모를까. 일단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를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그에게 내 앞니는 웨딩 촬영 소품으로 전락한 뒤였다. 그는 연이어 나의 노년을 논했다.
 
 


"그리고 지금이야 어려서 토끼 이빨도 귀엽지만 나이 들면 좀 그렇잖아요."


 
 나이들고도 귀여우면 좋은 거 아닌가! 속으로 무례한 그의 말에 씩씩거렸지만 괜한 말싸움이 생길까 봐 대꾸하지 않았다. 스케일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의 말들을 곱씹었다.
 
 미용 목적의 모든 시술들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그러나 그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것은 '자기만족'을 달성하려는 개인 내부의 동기만이 전부일까? 오래도록 기념해야 할 웨딩 사진은 흠이 없어야 하고, 신부의 튀어나온 치아는 그 흠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미용 목적의 시술이 완전한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기엔 개인에게, 특히 여성에게 누가 정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외형적 표준이 제시된다. 그 속에서 성형과 시술을 선택하는 것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것 같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앞니의 심미적 기능이 아닌 '원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남들처럼 가지런한 이, 남들처럼 부드러운 인상. 그런 것들은 모두 앞니의 실제 기능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도, 그렇다고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더더욱 아닌 내 앞니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크고 튀어나와있단 이유로 미워했던 건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평가 때문이었다. 앞니는 사진을 마음에 들게 찍기 위해 돕는 소품이 아닌데. 소화를 위해 음식을 잘게 씹어 낼 수 있다면 앞니는 제 역할을 다 해내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라면 내 앞니는 충분히 쓸만했다.
 
 이후에도 치과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내 앞니가 치과 의료진들의 정복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하단 착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의 치과 진료는 원 목적과 관계없이 기승전-교정으로 끝이 났다. 몇 달 전 사랑니 발치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지금 환자 분 치아열이 브이(V) 자에요. 보통 유(U) 자가 되어야 웃었을 때 아주 자연스럽고 가지런한 모습이 되는 거죠. 교정만 하시면 너무 예쁘실 텐데!”     
 
 


 치위생사는 더 예뻐지기 위한 목적의 교정을 권했다. '괜찮아요.'라는 간결한 말로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여전히 활짝, 입을 열고 웃으면 앞니가 먼저 보이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몸의 면적 1%도 되지 않을 앞니가 내 인격을 대변 할리 없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고 가지런한 인상을 주지 못하면 또 어떤가. 크고 튼튼한 내 앞니는 여전히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잘 씹어 내며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엔 내 집이 정말 없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