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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May 21. 2021

질투하는 어른




 석촌호수엔 날 앞지르는 사람 뿐이다. 잘 달리지 못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꼴등을 도맡았다. 혼자 하는 러닝은 심판이 없으니 마냥 즐거울  알았는데 막상 뛰다 보면 경쟁심이 생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옆을 제치고 나갈 때마다 지는 기분이 든다. 인스타그램에선  하다. #러닝기록, #러닝인증 같은 걸 검색하면 나와 수 분의 차이가 나는 기록들의 홍수. 고작 열댓 번 뛰어놓고 몇 년을 달린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우스운 줄 알면서도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왜 나는 속도가 늘지 않을까.



 나는 평생을 질투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좀스러운 마음이 머리 꼭대기를 차지하는 게 자존심 상했다. 온화하고 여유 있는 사람인양 살고 싶은데 속에선 늘 불이 났으니까. 나보다 저걸 더 잘하는 쟤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미 하는 걔를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면 나는 차라리 그 일을 하는 걸 멈췄다. 하지 않으면 부러워 할 일도 없으므로. 가령 나보다 더 잘 달리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아예 달리기를 그만두는 식이다. 상등신이 따로 없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앴으니 마음엔 평화가 찾아올지언정 그 일에 대한 성취는 영영히 갖지 못하는 데도.







 최근 허리를 다쳤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치료를 위해 몇 번이나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 당장 뛰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요즘은 허리 운동을 위해 삼십분 정도 걷는다. 뛰던 코스를 걷기만 하는 건 생각보다 지루하다. 가쁜 숨으로 뛰는 사람들이 여전히 날 앞질러 갔다. 뛸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이젠 하다 하다 뛰는 걸 부러워하냐. 어이없어 정말. 문득 노년의 나를 상상해봤다. 뛰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을 그때의 나. 뛸 수 있는 젊은 몸을, 그러나 노력한다고 얻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게 될 나. 그때에의 질투는 정말로 무의미하고 쓸모가 없을 것이다.



 질투도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애쓰면 닿을 수 있는 것들을 부러워할 때. 그때에의 질투는 쓸모가 있다. 지금의 나는 성취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갈망한다. 나서서 관뒀던 기억들이 범람한다. 거기에 머물렀어야 했는데. 지는 기분이 싫어 관두었던 모든 순간, 나는 나에게 실패하고 있었다.


 어차피 착한 어른이 되는 건 그른 것 같고, 평생을 시기 질투 없이 살 수 없다면 떳떳한 어른이나 되자. 한 번 더 쓰고, 한 번 더 뛰고, 한 번 더 움직이고. 그러다 결국 원하는 걸 갖지 못한다 해도 잘 싸운 거라고. 졌어도 멋졌다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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