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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un 06. 2021

프롬 월세 투 월세

 


 월세에서 전세로의 이주를 꿈꾸며 작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흠흠, 내가 이런 글을 썼었던가. 전셋집 찾기 전엔 길바닥에 드러눕는 시늉까지 할 기세로 쓴 글. 그 엄청난 포부가 무색하게도 현재의 나는 여전한 월세 살이 중이다. 트루먼쇼 주인공이 아니길 다행이지, 누가 이 상황을 지켜보며 깔깔 비웃을 상상을 하면 괜히 머쓱하다.


 이사  데는  월세야?라고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게요 호호호, 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월세라니    많다, 하고 말하는 이들에겐 차마 욕을   없고 그러게요, 하고 말았다. 호호호를 붙이지 않은   쪼잔한 자존심.




나의 첫 월세집





 작고 희미한 예산을 가지고 있던 작년의 나에겐(물론 앞으로도 딱히 선명해질 일은 없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번, 전세 대출에 일반 대출까지. 할 수 있는 대출은 다 끼고 무리해서 원하는 컨디션의 전세 집으로 들어간다. 2번, 포기할 건 포기하고 다 스러져가는 전셋집으로 들어가 2년 뒤를 기약하며 돈을 모은다. 마지막 3번, 그냥 전세를 포기한다.


 하도 틈만 나면 ‘전세 대출’, ‘전셋집’, ‘전세 계약’을 검색하던 탓에 당시 유튜브 알고리즘은 ‘전세가 어쩌구 저쩌구’하는 영상들만 화면에 띄웠는데 영상들에 의하면 나는 제법 개념 없는 경제적 관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으이구 인간아 전세 가서 돈 모아야지 돈! 모르긴 몰라도 그 유튜버들에게 물어봤으면 입을 모아 2번! 2번! 하고 조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절마다 온갖 벌레들이 창궐할 게 뻔한 집이나, 엘리베이터 없는 육층 옥탑방이나, 두 팔을 다 뻗는 것도 송구스러운 4평짜리 방. 얻을 수 있는 건 그뿐인 선택지를 고를 순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2번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다음은 1번. 선택지의 변수는 내가 평균 수준의 쫄보가 아니라 상당 수준의 쫄보라는 것이었다. 전세 사기를 당하는 수순이 정해진 사람처럼 머릿속엔 최악의 시나리오만 들어있었다. 아직 학자금도 다 못 갚았는데 여기에 사기까지 당해서 계약금 다 잃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을 때까지 빚만 갚다가 끝나는 건가? 어차피 이럴 거 주식이나 코인 한 번 제대로 해보고 망할 걸. 불쌍한 내 팔자 엉엉. 다달이 갚아야 할 월 이자는 전세 계약이 가진 위험을 무릅쓰고 선택할 만큼 이득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돈 아끼려고 무리한 선택을 한다? 쫄보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결국 3번이었다. 이로써 내 인생이 부유함과 낯가린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부자들이 사들인 건물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은 월급을 다시 부자들이 사들인 건물에 세 들어 살며 갖다 받치는 삶이라니. 우습다 우스워. 그래도 뭐 어쩌겠나, 모든 사람이 부자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 인생이 부유함과는 친하게 못 지내겠다는데. 이 모든 것이 원래 쥐고 있는 돈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 입이 썼지만 금세 털었다. 적어도 나에겐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자유 정돈 있다.


 어차피 다시 월세 살이를 하는 김에, 정말로 원하는 집을 얻기로 했다. 알레르기가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채광’과 ‘환기'. 심약한 쫄보의 평안한 삶을 위해 차순위는 '치안'과 '안전'. 이게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건너뛰었다. 방의 크기나 베란다 같은 걸 강조하는 중개사도 있었지만 그건 내게 중요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렇게 꼬박 3주를 헤매고 난 작년 겨울의 초입. 지금의 집과 만났다.












 나는 지금 사는 곳이 좋다. (겨울부터 살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쾌쾌한 곰팡이 냄새도 습한 기운도 없는 이곳이 좋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공원이 있는 게 좋다. 창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고 흘러가는 계절이 보이는 게 좋다. 여전히 이 집에도 몇 가지의 단점이 존재하고 다달이 나가는 월세로 쓰린 속은 면역이 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 곳은 내가 집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이다.

 

 하루라도 더 많이 돈을 모아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불안이 내게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일이라는, 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사느니 손에 쥐어진 확실한 오늘을 위해 살고 싶을 뿐. 욜로니 뭐니, 지나간 유행을 추구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욜로욜로 하며 살만큼 돈 많은 삶도 아니고. 그저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며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행복은 미룬다고 불어나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는 나에게 3가지 선택 중 최악을 선택했다고 할 것이다. 아니, 아예 독립을 한 게 잘못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정답을 골랐다곤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라면 정답도 상대적일 것이기에, 적어도 이 순간의 나에게만큼은 내 선택이 최선이었으리라 믿으려고 한다. 짧고 좁은 인생에서 행복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월세에서 월세는 내겐 그런 선택이었다. 이제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 이상 ‘돈 모으기’가 아닌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나 즐겨보는 예능과 드라마 클립들을 보여준다. 경제 유튜브를 보며 우울해하는 나보단, 예능 클립을 보면 깔깔 웃을 수 있는 내가, 그러다 잠이 드는 내가, 적어도 지금은 더 좋다.




 이 글은 누군가에겐 또다시 월세살이를 해야 하는 인간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정신승리 맞다. 그렇게 해서라도 패배한 기분으로 살지 않을 수 있다면 백번이고 할 것이다. 계약서로 묶인 2년 동안의 내 집. 계절이 지날 때마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고 인생은 또다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기를 결심해본다.


 잘 부탁해, 나의 두 번째 월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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