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대면 모임이 없어졌다. 작은 소모임부터, 각종 중요 회의까지 아예 사라졌다. 직장에서는 퇴근 이후 아예 집 밖 외출을 금지할 정도였으니 나 역시 상황은 심각했다.
문제는 2년 동안 연이어 진행했던 독서 모임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모임에 참석하는 얼굴이 대부분 20대 초 중반의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그들의 혈기 넘치는 활동에 행적불명의 코로나바이러스가 함께 올 수도 있는 상황.
모임 장으로서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다. ‘이 모임이 계속 유지 돼야 할까? 그러다가 다들 걸리면 어떡하지? 괜히 피해 주는 건 아닐까? 잠시 일시 정지를 선언해야 하나?'
때마침 연 일 뉴스에서는 강화된 정부 정책을 일 면으로 내세웠고 함께 할 수 있는 인원은 점점 줄어들어 5명, 3명, 마지막에는 나 혼자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처음 이곳에 앉아 책 이야기했을 때가 행복했었는데….’ 한 참 고민 끝에 스승님께 문의를 드렸다.
"스승님, 오프라인 모임이 아예 폐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임, 유지하는 게 나을까요?”
"뭔 걱정이 그리 많습니까. 단지 책 자체를 좋아해서 모였던 사람들이 얼굴 안 본다고 책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처럼 온라인 모임을 해보세요. 요즈음 멀티채팅 중에 줌이라는 화상 회의 앱이 있습니다. 저도 요즘 그쪽으로 노선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변화에 빨리 대응하세요. 반응하면 늦어요.”
‘그렇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오프라인이 아니라면 온라인으로 하면 됐다. 바로 채팅방에 공지 글을 올렸다. ‘우리 다음 주부터는 줌(ZOOM)으로 봐요!'
단체 채팅방에 있는 얼굴은 열아홉 명. 모두 기다렸다는 듯하나 같이 동의했고 모임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어느새 횟수로 만 2년째다. 처음엔 얼마 가지 않을 거라는 기사와는 반대로 확진자는 증가추세다. 독서 모임 인원 역시 하나둘 확진이 되더니 결국 유행처럼 전원이 한 번씩 걸렸다. 이땐 온라인으로도 병이 전염되나 싶었다.
문제는 다 같이 뜻을 모아 함께 하던 온라인 독서 모임 자체에도 사람들이 슬슬 빠지기 시작한 것. 전적으로 모임을 이끄는 리더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스승님의 말을 듣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든 함께 하고 싶었고, 저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내 인생의 쉼표였다. 가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속에 담아 두었던 기억을 꺼내어 나눌 땐 조용히 휴지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1주 1 책이라는 독서 모임은 단순 한 책 읽기 모임에서 나가 자신만의 쉼표를 찾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저도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즐거운 배움이었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어요.! 다른 곳에 가셔도 즐거운 독서 하세요!”
매주 토요일 여덟 시에 얼굴을 보던 마지막 사람까지 창을 껐다. 다음 주부터는 빈 화면 앞에 혼자 등장해야 한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있을 법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람도 흘러간다는 말이 위로됐다. 슬펐다. 마지막 인사는 웃으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나 카톡으로 커피 교환권까지 보내줬다. ‘내가 더 잘했다면, 이것보다 더 나을 수 있었을까?'
그날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줌을 켜지 않았다. 검정 화면에 비치는 내 모습에 자꾸 작아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도 이길 수 없었고, 떠나는 사람도 잡을 수 없었다.
한동안 책을 멀리했다. 그 시간에 센터에 들러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무언가 채우길 원했다. 긴 시간 동안 제주도로 여행도 떠났다. 전날 밤, 이리저리 뒤척였다. 할 일 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 모니터는 마지막으로 전원을 껐을 때 그대로였다. ‘의자에 마지막으로 앉았던 게 언제였더라….'
모니터 앞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뭐에 흘린 듯 전원을 켜고 자세를 바로 앉았다. 키보드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오래도록 자기 일 하지 않았던 조명도 잠을 깨웠다. 오랜만에 자기 일을 할 수 있어서 신이 났는지,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것 같다. 이 녀석도 벌써 7년째 같이 하는 중인데 쌩쌩하다.
마지막으로 써두었던 일기를 열었다. 맞춤법은커녕 무슨 말을 했는지 오탈자 천지다. 그때 기분이 우울했었나 보다. 마지막 줄에 쓰여 있는 글이 짠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스승님께서는 수업 시간이면 늘 말씀하셨다.
"사람 사는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낼 건가요?. 대응해야죠. 반응하면 늦어요. 세상의 순리대로 따라가되, 자기 인생의 켜는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해요. 자꾸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폭포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릅니까. 정신 차리세요. 인생은 방황하기에 짧아요."
‘아…….; ' 나는 지금 또 세상 탓을 하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 시간 내내 ‘내 인생의 키는 내가!'를 외치면서도 또다시 흘러가는 대로 가고 있었던 것.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얼른 문서 여백을 폈다. 하얀 화면이 눈앞에 가득 찼다. 검은색 마우스 커서가 깜박인다.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코로나 상황으로 이렇게 된 게 내 탓이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 왜 나는 혼자 끙끙 앓고 있었을까.
다음 날 비행기에 책 한 권과 함께 탔다. 그동안 잠시 멀어졌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에 공항 서점에 들러 책갈피도 새것을 사 꽂아줬다. 책 표지에 쓰여있는 제목은‘삶의 태도'다. 책갈피가 마치 머리핀을 꼽은 그것처럼 얼굴까지 좋아 보인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힘을 들이지 않아도 연신 책 장을 넘겨준다. 검은색 모니터에서 탈출한 내 삶의 쉼표가 하나 더 생겼다.
토요일 아침, 늦잠 자는 내가 미워 운동이라도 할 겸 사는 지역의 소모임을 찾아봤다. 스마트폰 하나면 연락처 모르는 사람도 금방 연락되는 세상이다. 20, 30대가 모였다.
"내일 휴일인데, 뭐 하세요? 다들 카페에 들러 이야기라도 나눌까요?”
조용하던 채팅방이 연신 울려댄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좋아요'가 줄줄이 있다. 이 정도가 되니 나도 빠질 수 없겠다 싶어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럼 저도! 갑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사는 곳 근처 산에 올랐고, 월요일은 카페 모임이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기운이 솟는다.
k 대학교 인근의 작은 카페에서 모였다. 오후 다섯 시. 해 질 녘 시간. 다들 연휴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나의 맞은편에 앉은 분이 물었다.
"그럼 책은 어떤 것 좋아하세요?"
"아, 분야는 가리지 않아요. 소설, 인문학, 시집, 그 외에도 많기는 한데 요즘은 시집을 많이 읽네요”
이쯤 되면 사람들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운동 좋아하신다더니 시요?' ' 신기하네요.'
"아, 뭐 그냥 간단히 읽고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괜히 어정쩡하게 하루 보내는 그것보다는 시 하나라도 읽고 나름 해석하면서 보내면 하루가 즐거워요.”
"제 주변에 시 좋아한다는 분은 처음 봤어요. 예전에 독서 모임을 진행하셨다고 하셨는데 저희도 책 모임 해 주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아. 네. 좋습니다. 책 이야기라면 언제든 좋죠. 밤을 새워도 저는 좋습니다.”
"그럼 이번 주 토요일은 책 모임을 하죠”
"네 그렇게 해요!”
짧은 대화 하는 내내 손에 땀이 가득 찼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은 묻어두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면 되는 거다. 인생의 키는 내가 쥐고 있기로 한 이상, 물러나지만 않으면 된다. 이 또한, 쉼표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는 물러나지 않는다. 강에 돌부리가 있으면 내가 가진 키로 밀어내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언제든 쉼표를 찍을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