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과 동시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기숙사 식기 세척 하는 일, 학과 조교 일, 학교 정문 스튜디오의 보조, 야간 편의점을 지키는 일, 그 외에도 스키장, 계단 청소 등 등. 하루 평균 두 개 이상을 했지만 정작 돈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다. 집에 보내고, 다른 친구들처럼 여러 경험에 돈을 썼기 때문이다. 졸업을 앞 두기 전 달까지 수중에 남은 건 백만 원이 조금 안 됐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언가 한 맺힌 사람처럼 벌고 썼다. 덕분에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던 스튜디오의 도움받아 사진 전시전도 열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20년 전 지금의 직장에 취업을 성공했다. 처음 발령받은 곳은 강원도의 작은 시골이었다. 그땐 직접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없었으므로 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원주에서부터 갈아탄 버스는 목적지까지 가지 않아 중간에 내려야 했다. 그렇게 다른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쯤 달려 도착 한 곳. 아직도 생생하다.
창 밖엔'bus'라고 쓰여있는 녹슨 철 간판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케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찻길을 한 참을 걸어가는데 '이런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걱정이 밀려왔다.
민원 종합받고 처리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중엔 꼭 하루에도 몇 명씩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내가 넓은 마음으로 대하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스물둘 의 나이에 그렇게 마음 넓지 못했다. 첫해 내가 발령받은 곳의 별명이 있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때 만났던 선 후배 동료들 중 몇몇은 다른 일을 하겠다며 직장을 떠났다. A 선배는 자신의 취미를 살려 음식점을 하겠다고 했고, E후배는 인천에서 유명 호프집 체인점을 두 개 운영하겠다고 했다. 입사 동기 C는 운동을 좋아하니 수영장에서 강습을 시작하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한 적 있다.
고등학교 땐 집만 떠나면 될 줄 알았다. 대학교땐 졸업만 하면 희미하지만 내가 그리지 못한 꿈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취업 한 뒤에 돈을 벌면 가고 싶은 곳,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일주일 전 C와 통화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회원이 줄어 월급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잘 나가다던 A와 E의 소식을 물으니 각자 시작한 사업이 힘들어져 생활고를 겪는다는 말을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할까 하다 그만뒀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고민과 방황은 지금의 내가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진로희망을 정하지 못해 밤잠을 설치던 시간은 무엇이 됐든 5년, 10년 후의 내 모습과 연관 지어 봐야 한다는 지혜가 되어 같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선배가 됐다. 남들과의 비교 끝에 생긴 열등감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산다.
지금의 내 삶의 정답이라고 하지는 않겠다.각자가 그리는 꿈은 다른 법이니까. 다만 꿈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면'
이라던가, 남들 따라 하는 삶말이다.
어른이 됐다. 직장을 다닌다. 돈을 번다. 수십 년 전 어렸을 때의 꿈은 이루었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가까이 가는 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직업이 꿈인 줄 알았다. 결혼이 행복인 줄 알았다. 돈이 전부인 줄 알았다. 넓은 집에 살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작은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 찾아온 건 만족이 아닌 더 큰 부재였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선호하는 삶의 모양도 계속 바뀐다. 커지거나 사멸하거나를 반복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며 사는 것이 삶이다. 하루를 지키고, 지금의 모습을 성장시키는 것이야 말로 꿈을 향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