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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6시간전

20년 만에 찾은 정답 (하)

아홉수의 저주


열아홉의 내가 찾지 못했던 질문의 대답을 다시 찾아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노트북에 쓰다 말다 반복한 일기를 꺼내 봤다.


첫 기록이 2017년이었다. 벌써 일곱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 내용 대부분이 ‘물음표’였다. ‘무엇을 좋아할까?’,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어떤 삶을 살아야 잘하는 걸까?’, ‘행복은 뭘까?’.


글 속에서 성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돈을 벌겠다고 집에서 독립한 스무 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취객에게 멱살 잡힌 스물한 살, 직장 사람들과의 오해로 힘들어했던 수많은 시간, 혼자가 된 이후 세상에 온갖 불만만 품고 살았던 나까지.


차라리 잘됐다 했다. 정신과 상담받다 나는 죽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께 소리 지르던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죽겠다고 갓길 벽에 일부러 차를 들이받고 차가 전복된 경우는 또 얼마나 많겠냐고 했다.


다 버티고 나니, 죽음의 수용소에서 버티던 사람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미친 사람이 됐다. 술잔보다 책장 넘기는 걸 좋아하고, 말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딱 맞는 진로 희망이 있었다. 작가였다. 읽고, 듣고 쓰는 사람.


이제야 하는 고백인데, 초등학교 시절 ‘PD’,‘시인’이라는 직업이 진로 희망에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그랬다. ‘밥 굶기 딱 좋은 직업이다!’ 그래서 무작정 돈 벌겠다고 아르바이트며 직장에 빨리 취업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이젠 밥 굶지 않는다. 대신 술과 약은 굶는다. 간혹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작가의 숙명’이라는 핑계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직장인이 또 다른 일을 한다는 건 밤잠을 포기하는 수밖에.


간혹 직업선택을 꿈이나 진로 희망으로 생각하는데, 착각이다. 바꿔 말하면 꿈이 직업은 아니라는 말이다. 막상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등 따뜻하게 누워 있다 보면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까맣게 잊게 된다.


꿈이라는 건, 그동안의 내가 마음속에만 품어 뒀던 일,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잡아 주는 길잡이다.


한 페이지씩 채워지는 글을 볼 때마다 내 삶의 쉼표도 늘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면 딱 그 자리에 멈추고 심호흡한다. 그렇기에 무작정 남이 옳다고 하는 길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용기다.


오늘도 나는 작가 시늉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 남들이 걷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걷는다. 아홉수의 저주가 풀렸다. 마흔아홉이 기다려진다.

    


https://youtube.com/shorts/SwFlU7J0E54?si=vmoMxUPSKhBoOp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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