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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Jan 22. 2024

녹음실과 라이브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자신은 녹음실 가수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내가 가수가 아니다 보니 완전한 공감은 하지 못했는데 며칠 전 지인과 통화를  때였다.


작가로서 나의 유일한 자부심은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 이야기 하 갑자기 그 가수의 말이 확 다가오며 정리가되었다.


"라이브를 계속하는 가수랑 녹음만 하는 가수의 경험치가 다른 것처럼 글을 쓰기만 하는 작가와 세상에 내놓는 작가도 정말 다를 텐데 내가 지금 녹음만 하는 가수같이 되어버렸네요."


매일 쓰기는 하지만 세상에 내놓는 건 많지 않다. 드러내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혼자 쓰는 일기처럼 되어버린다.


매일 쓰기가 정말 대단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지켜오고 있기 때문에 내겐 만족감을 주지만 거기에서 끝나도 괜찮을까.      




처음 매일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노희경 작가님 강연을 들은 후였다.      


작가님께서는 몇 년 동안 매일 한 자라도 썼고 한 자도 쓰지 않은 날에는 자신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며 역시 대단한 분! 하고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왜 매일 쓰는 것이 중요한지 몰랐다.      


노희경 작가님은 드라마 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는데 그때 교육원 학생들에게 반마다 다른 과제를 내어주셨다.      


전문반 학생들에게는 매일 한 줄을 쓰라고 하고 최우수반격인 창작반 학생들에게는 매일 5분 이상 쓰라고 하셨다. 전문반 학생들 중 매일 한 줄 쓰기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던가. 창작반에서 5분 쓰기를 한 학생은 한 두 명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아, 매일 쓰는 게 중요한 거구나.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존경하는 작가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쓰기를 했고 몇 달 만에 멈췄다. 신기한 건 매일 쓰기를 할 때도 딱히 뭐가 좋은지는 몰랐는데 막상 매일 쓰기를 멈추니까 글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달에 5만 자 정도를 쓴다고 했을 때 매일 쓰기를 안 해도 그만큼 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열흘 동안 5만 자를 쓰는 것과 한 달 동안 조금이라도 매일 써서 그 분량을 쓰는 건 글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이 달라지는 기분이다.      


어디 글쓰기 책에 매일 쓰기가 왜 좋은지에 대해 나온 걸 본 듯도 한데, 정확히 기억나는 부분은 없다. 아마 많이들 알고 계시는 것처럼 하루키도 매일 원고지 20매 정도를 쓴다더라, 그런 얘기만 생각나고.      


결국은 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숨을 쉬듯 글을 쓰려고 하는  편이다.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하지만 여전히 노트북 앞에 앉아 한글 창을 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때가 많다. 어느 날은 자기 전에 졸린 눈을 간신히 부릅뜨고 몇 줄을 쓰는 게 전부다.     


그래놓고 매일 쓰는 작가라고! 하며 누군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한 줄이라도 매일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나 역시 지금처럼 매일 쓰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런저런 글을 쓰기만 하고 있는 나는 1년 넘게 녹음실에서 녹음만 하는 가수와 같은 상황일지 모르겠다. 라이브로 관객을 만나는 가수와 녹음만 하는 가수는 뭐가 다를까?    

  

써놓은 글은 많은데 꺼내놓지 않으면 녹음실에서만 작업하는 가수처럼 라이브에 대한 감각이나 도전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매일 쓰지만, 너무 오래 묵히는 것도 내 경우에는 좋지 않은 듯하다. 오래 품고 다듬어서 세상에 멋진 대작을 내놓는 작가님들과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노래할 수 있는 곳이라면 버스킹을 하며 한 명의 관객 앞에서라도 마이크를 잡는 무명 밴드처럼, 그렇게 글을 쓰고 소통해야 한다.

     

고성에서부터 써놓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녹음실을 벗어나서, 라이브로 관객과 만나는 가수의 떨림을, 그 두려움과 벅참을 마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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