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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Jul 09. 2022

이젠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교실에 올라와서 차분하게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그래서 받아보니 민희다.  

"선생님, 저 민흰데요. 그냥 인철이하고 앉으면 안 돼요?"하는 소리에 민희의 심경에 갑자기 무슨 변화가 일어나서 바꾸어 달라던 짝꿍과 다시 앉혀달라는 건지 이유를 물어볼 새도 없이 민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시죠? 민희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짝꿍을 바꾸어 달라고 한 것이 잘못한 것 같대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인철이 때문에 속상해서 선생님께 짝꿍을 바꾸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내일 바꾸어 주마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철이와 그대로 앉아서 잘 도와주고 싶대요. 이젠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데요. 그러니 인철이하고 그냥 앉혀주시면 안돼요? 민희가 앉고 싶다는데...."


민희가 앉고 싶다는데야 나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민희 어머니가 든든한 후원자 아닌가. 그러나 내심은 민희를 인철이에게서 그만 해방을 시켜주어야 한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었다. 민희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은 짐을 지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학년 입학식을 치루고 함께 생활해온 지 그새 3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인철이는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구분이 되는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거나 늦된 아이더라도 지금쯤 받침 없는 글자는 읽기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인철이는 낱자 쓰기는 물론 읽기가 전혀 안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구체물 조작이나 만들기, 그리기 활동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학습활동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학습능력이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조심스럽게 정신지체가 아닐까 염려해보지만 그러나 절대로 속단할 일이 아니어서 도움반 선생님께 조심스레 검사를 의뢰했고 작년 12월부터 다닌다는 학원 선생님께도 아이의 상태를 전화로 여쭈어 보았다. 결과는 내 판단대로였다.


학원에서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인철이를 가르쳐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안되겠기에 어머니를 불러서 상담을 했었단다. 인철이 아빠가 글자를 가르쳐보기 위해서 무섭게 다그치며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보았지만 안 되더라며 학원 선생님께 포기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인철이의 틱장애가 아빠의 영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마다 온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쳤고 눈을 불안하게 깜박이는 민철이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웠다.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유난히 온순하고 착하며 맑은 눈빛이 더욱 가슴 아픈 인철이는 특히 만들기 시간만 되면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가위질을 하고 풀칠을 하다가 갑자기 "재미있다! 재미있다!"를 연발하곤 한다. 그리고 혼자 소리내어 웃지만 이러한 인철이의 모습을 의식하고 의아해하거나 시끄럽게 방해한다며 탓하는 일 없이 모두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맹집중이고 열중인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다.


본인이 원해서 인철이와 앉았다 하더라도 일일이 챙겨주어야 하는 일이며 짝꿍과의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민희가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다. 그래서 더 이상은 민희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짝꿍을 바꾸어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설명을 해주고 방법을 알려주는데도 인철이가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 있기만 한다며 매우 속상해하는 모습으로 어렵게 짝꿍을 바꾸어 달라는 민희에게

"그래, 그동안 우리 민희가 인철이를 열심히 도와주었어. 오늘은 1시간 남았으니까 짝꿍은 내일 아침에 바꾸어 줄게. 인철이는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자. 알았지?"하고 들여보냈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엄마를 닮아서 의식이 남다른 민희는 인철이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받아쓰기도 잘 하고 게임도 잘 해서 함께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엄마께 자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민희가 알 리 없다. 인철이도 자신처럼 열심히 연습하면 되는 줄 알고

"인철아, 오늘 집에 가서 엄마하고 받아쓰기 연습해 와. 알았지? 나도 연습 많이 한단 말이야."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깝다.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된 의식으로 친구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챙기는 모습이 천사같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답지 않은 민희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공부를 잘 하고 똑똑한 것도 좋지만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이니만큼 조금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민희 엄마의 뜻은 요즘 시대에 귀감이 된다.


"선생님, 제 아이가 인철이와 앉지 않는다면 누가 인철이와 앉으려고 하겠어요. 제 아이가 힘이 들더라도 어차피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일이고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대로 인철이와 앉혀주세요. 그리고 제 아이가 잘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너무 칭찬하지 말아주세요. 건방져질까봐 걱정이 되어서예요. 아이들 상품으로 제가 보내드린 노트도 민희 엄마가 사왔다는 걸 반 아이들이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늘 감사드리고 오늘도 힘내세요."


짝꿍이 괴롭게 하고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바꾸어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나 공부를 못한다거나 못 생겼다는 이유로 바꾸어 달라는 아이들이 있는 요즈음 민희 어머니의 의식과 어린 민희의 태도는 우리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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