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오후 방과후수업이 있는 관계로 교실을 비워주기 위해서 점심 후 우리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난 후 조퇴를 받고 집에 가는 길이다. 학교에서 나와 큰 도로에 막 들어섰는데 전혀 막히지 말아야 할 곳에서 차들이 잔뜩 밀려 서 있는 것을 보고 ‘한여름 뙤약볕에 큰일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샛길로 빠졌을 텐데 도로에 들어서서야 알았으니 당연히 교통사고가 난 것으로만 생각했다.
천천히 한 대씩 차량들이 빠지면서 우회하는 곳에서 보니 사고가 아니라 응급환자가 생긴 듯 뒤에서는 빨간 소방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횡으로 서 있고 앞에서는 앰블런스가 대기, 해당 승용차의 문 앞에 2대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여러 명의 구조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서 무엇인가 급박한 환자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사고가 났다면 주변에 사고 차량들과 견인차, 경찰차들이 즐비했을 텐데 사고가 났을 때 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우회를 해서 도로로 진입하고 나서야 문득 소방차량과 119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감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뜨거운 뙤약볕에서 도로를 정리해주는 대원들이나 잠자코 기다리면서 도로 정리 대원들의 지시에 따라 순응해주는 많은 운전자들의 모습도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하얀색의 승용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전혀 모르나 급박한 상황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퇴근하면서 얼마 전의 또 다른 장면이 생각났다.
퇴근하는 차량들로 한창 도로를 메우는 시각인데 어느 트럭에서 떨어졌는지 길을 막고 있는 수 개의 장애물들 앞에서 용기있게 차를 세우고 차분하게 처리하는 작은 트럭 운전자의 모습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집에 오면서 ‘만약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애물의 크고 작은 문제를 떠나서 정신없이 많은 차량들이 달리는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장애물을 치울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간 많은 차량들이 떨어져 있는 장애물들을 피해서 지나갔을 것이고 뒤따라오는 차량들을 의식했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뒤이은 차량들은 왜 차가 밀려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급한 마음 잠시 접어두고 잠자코 기다려주는 모습도 감동이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차를 세우고 장애물을 치우는 작은 트럭의 멋진 운전자와 함께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에 가슴 훈훈한 감동을 받고 더불어 행복해진다. 이렇듯 감동과 행복은 결코 크고 대단한 것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때론 간과하며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