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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May 29. 2024

추억의 김밥

김치김밥

요즘 혼자서 김치김밥을 즐겨 먹고 있다. 쌀누룩을 넣어서 감칠나게 익은 김장김치를 넣으니 맛이 제격이다. 하나씩 먹을 때마다 감탄을 연발한다.


명퇴하고 내려오기 직전 수지에서 함께 살았던 첫사랑 우리 지우와 둘째 현우에게 싸주었던 김밥을 맛있다며 너무나 잘 먹던 모습이 생각나서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 엄마 김치김밥 먹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단다. 그 때 지우와 현우가 맛있다며 좋아했던 맛을 엄마가 지금 즐기고 있어."

"그러게...눈물의 김밥이었지.."


딸은 막내 지원이를 임신해서 만삭이었고 대상포진이 걸릴만큼 너무나 힘들다보니 엄마한테 오고 싶다며 미얀마에서 두 아이들과 들어와 잠시 함께 살고 있던 중이었다. 명퇴를 해야 할 만큼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출근해야 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겨둔 채 일어나지 못하는 딸의 심정이 어떨지 내가 너무나 잘 안다. 그렇듯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던 딸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니 당연하다.  


나 역시 바쁘고 힘든 몸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안되다보니 아침에는 급한대로 김에 김치를 넣어서 김밥을 싸주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었다.


"할머니, 김치김밥 너무 맛있어!"


어린 아이들이 할머니와 엄마의 상황을 알기라도 하듯 김치김밥이 너무나 맛있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맛있게 잘 먹어주었고 싸놓기가 바쁘게 둘이 앞다투어 먹는 모습이 할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알리 없다.




며칠 전 남편과 약속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 맛집을 찾아 맛있는 식사를 하자며 주변의 맛집까지 찾아놓고 자동차 점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검이 끝날 예상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남편이 내려가더니 잠시 후에 부른다.


내려가보니 자동차 점검을 하던 직원이 식사하러 갔다며 인근에 김밥집이 있으니 식사하고 오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한다. 결국 찾아둔 맛집도 가지 못하고 인근의 김밥집으로 갔다.


옛날 김밥을 2줄 시켜놓고 비빔냉면을 한 개 시켰는데 부부가 함께 계시는데도 아주머니 혼자서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김밥도 싸고 냉면도 만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먼저 갖다주신 김밥을 먹는데 남편과 함께 오랫만에 김밥을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정말 맛있게 먹었다.


김밥을 하나 더 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냉면이 나왔는데 나처럼 무딘 사람의 입에도 냉면 맛은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집에서 솜씨없는 내가 끓여도 충분히 나올 맛이다. 남편과 함께 김밥집을 나오면서 좀처럼 하지 않는 말을 했다.


"김밥은 너무나 맛있게 먹었는데 냉면으로 입을 버렸네."

"그러게... 우리야 한 번이니까 그렇지만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안 먹겠는데...."


김밥을 먹으면서 보니 그 작은 가게에 테이크아웃이 많았다. 우리처럼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몇 팀 안되는데 김밥을 주문해서 사가지고 가는 분들이 모두 단골로 보였다. 그나마 김밥집이 다행인 것은 김밥이 맛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가끔 어렸을 때 김밥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리내어 웃는다. 나만 김밥 추억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그랬단다. 어렸을 때 김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며.....


엄마가 우리 형제에게 나누어 주셨던 김은 1장씩이었다. 다른 것엔 마냥 후하셨던 우리 엄마가 김만큼은 1장 밖에 주지 않으셨던 이유가 어려운 시절이라 김을 더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1장이면 한그릇이 뚝딱이었다.


힘든 살림에 우리 엄마도 참으로 애쓰셨다. 자식들이 달라는대로 주었더라면 우리 엄마의 마음도 마냥 즐겁고 흡족하셨을 테지만 자식들이 달라는데도 주지 못하는 그 심정은 오죽하셨을까 생각하니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음에도 짠하기만 하다.


김 1장에 밥을 부어 간장을 넣고 돌돌 말아 싸먹던 김밥의 맛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리운 김밥이 되어버렸다. 김치김밥의 맛은 기억나지 않으니 김치를 넣어 먹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넓적한 김치 한 장을 그대로 밥 위에 얹어 싸 먹었다면 더 맛이 있었을 텐데.....

이 남자의 Coo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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