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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May 30. 2024

모닝콜

일상생활영어

이른 아침 6시 40분부터 10분간 영어 모닝콜을 하고 있다. 건강이 좋아지니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쯤이야 이제는 식은 죽 먹기다.


36년 현직에 있는 동안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출근만 하면 동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학교생활은 우리 아이들과 너무나 행복하게 지냈었다. 천직이라고 여겼으니까.....


몸이 건강해지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데 30년이 넘도록 아침 기상을 힘들어하며 어떻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몸으로 정말 애썼다.


명퇴하고 내려와서 교장으로 퇴임한 우리 선배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교장으로 재직시 함께 근무했던 미국 원어민 교사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는다며 통화를 하는데 선배님의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절친과 대화를 나누고 있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매우 편안해 보였다.


한창 젊어 의욕에 찼던 현직 때의 일이다. 방학이 가까워오자 남편이 난데없이 함께 영어연수를 받자는 제의를 한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영어는 손을 놓고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싫다고 했다. 남편이야 대학 영어와 일어를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면 정식 문장은 아니더라도 외국인과 소통이 되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파견교사로 가기 위해 도전도 했었다.


"당신 혼자 가서 받아."

"아니야.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함께 가서 받자."


무엇이든 함께 하기를 원하는 남편이 곁에서 도와주겠다는데 극구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번 기회에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자는 심산으로 의기양양하게 영어 연수를 신청했다.


그 많은 연수생들 가운데 우연찮게 남편과 같은 반이 되어서 옆 자리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고 있는데 원어민 강사의 질문이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앞에서 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하는데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곁에서 도움을 주겠다던 남편의 반응은 묵묵부답. 결정적일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 뼈저리게 느꼈다. 하긴 20명이 넘는 교사들이 원탁으로 둘러앉아 원어민교사와 나를 향해 초집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의 도움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음을 모르는 내가 아니다.


원어민 강사의 질문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순간 식은 땀을 흘리며 당황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마저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연수를 받는 동안 열심히 했다.


내친 김에 심화과정까지 하자는 남편의 말에 순응하며 방학을 모두 영어연수에 바치고 나니 나름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이대로 손 놓지 않고 영어를 계속 한다면 원어민과의 대화도 조만간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기대 만발, 연수를 즐겁게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빠져서 영어를 꾸준히 하려던 다짐은 생각과 계획이었을 뿐 작심삼일이 되어버렸다.


이후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이번에는 꼭 영어를 다시 시작해야지.'하고 다짐했지만 그마저 생각으로 묻혀버리고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명퇴하고 고향에 내려와서야 선배를 만나서 그동안의 다짐과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진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야 50% 정도는 알아듣고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하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 한 것 중 하나가 모닝콜이다. 순전히 선배 덕분이다.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전주의 모 생활문화센터에서도 원어민 수업을 받고 있다. 클래스 명이 '시니어 여행영어'지만 대부분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고 수시로 여행을 다니는 분들이 참여하는 수업으로 젊은 사람들도 함께 하고 있다.


선배님의 조언이 학원에도 다녀봤고 유튜브 영어도 들어봤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 1:1 대화란다. 그래서 모닝콜을 10년째 진행하고 있고 내가 다니고 있는 문화센터의 중급반에서 프리토킹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급반은 소설책을 읽는 수준의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교재 없이 프리토킹으로만 진행하고 있다 하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선배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일상생활에 대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오늘 아침에도 필리핀 원어민 교사와 즐겁게 모닝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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