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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Aug 25. 2021

영웅이가 불쌍해

임영웅의 녹화방송을 보고

 어르신의 하루는 영웅이와 함께 시작합니다.

거실에 임영웅 브로셔가 놓인 날부터 어르신의 기상이 빨라졌습니다. 영웅이를 보러 거실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영웅이를 침실에 놓아요. 그러면 주무시면서도 영웅이를  수 있잖아요."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영웅이를 볼 때는 맑은 정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웅이를 너무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막내 아드님이 임영웅의 노래만 담아 놓은 영상을 틀어 주었습니다.

어르신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지셨습니다.

소파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시던 어르신은 2시간이 넘도록 영웅이의 녹화영상에 쏙 빠지셨습니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고, 지휘를 하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에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듯 양 볼에 홍조를 띤 채 즐거워하십니다.

큰 며느님이 사다 준 영웅 브로셔를 보며 말도 건넵니다.

"넌 어쩜 그리도 노래를 잘하니? 가사가 딱딱 와닿네."

그. 런. 데


갑자기 어르신의 표정이 퍼집니다. 

"영웅이가 불쌍해."

느닷없이 영웅이가 불쌍하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어르신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반문합니다.

"네? 왜요?"

"사람들 나빠. 됐어."

"......."

"영웅이가 쉬지도 못하고 2시간을 노래하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한곡 끝나면 계속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얼마나 바쁠까?

나는 보기만 해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노래하랴, 재롱떨으랴 우리 영웅이 얼마나 힘들까?

이제 영웅이 좀 그만 괴롭히지..."

'아. 어르신....'

"영웅이 목쉬기 전에 노래 그만 시켜야 하는데...

영웅이가 아무리 착해도 그렇지 2시간 동안 노래를 시키다니 에이 나쁜 사람들..."


어르신의 귀여운 불평에 살짝 공감을 해 드립니다.

"그러게요. 영웅이 쉬야 하니까  TV를 끌까요?"

어르신은 을 동그랗게 뜨며 손사래를 칩니다. 영웅이가 그만둘 때까지 먼저 끄면 안 된다고 하네요.

 힘들어하시는 어르신을 위해 몰래 TV 채널을 돌려 봅니다.

다른 곳에선 홈쇼핑 호스트의 목소리가 낭랑합니다.  거기에는 영웅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제야 어르신은 숨을 몰아쉽니다.

 "영웅이 노래 부르는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 저렇게 열심히 노래하는데 틀리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했지. 그런데 우리 영웅이 틀리지도 않고 참 잘하네." 

 

 어르신 손으로 TV를 끕니다.

"불쌍한 영웅! 이젠 좀 쉬렴. 내가 보고 싶은 거 꾹꾹 참을게."


당분간 영웅이가 나오는 영상 금지입니다.

어르신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두 볼은 분홍빛 볼터치가 선명합니다.

어르신의 영웅이 사랑은 최고입니다.

(임영웅 얼굴사진 쿠션이 항상 어르신 곁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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