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가장 행복할 때, 맥도날드 감자튀김
반복되는 삶이지만, 그중 유달리 긴 주가 꼭 있기 마련이다.
지난 주가 딱 그러했다.
일복은 터지고, 끊임없이 이슈는 터지고 평시에 안 찾던 이들까지 끊임없이 찾는 주.
평시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집에 들어온 날들이 많은데
끝난 것들에 대한 해방감보다 남은 것들에 대한 부담이 더한 주.
이것이 끝이라면 다행인데, 밀려드는 일들을 쳐내고 나니 벌써 일요일이다.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충격적이게도 더 바쁜 한 주가 다가오고 있다.
문득 억울함이 단전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다.
좋은 거 먹고 마시고, 따뜻하게 잠들고, 든든한 옷 껴입고, 가끔 소박한 사치를 누리고자 하는 일들인데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저당 잡히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물음표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에 특화되어 있다.
물음표를 그린 순간부터 평시에 돌아가지 않던 두뇌가 그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명석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직 미래에 더 맡겨볼 것인지, 현재를 즐길 것인지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정해진 듯이 몸속에서는 벌써 엔돌핀이 돌기 시작한다.
그래, 어차피 내일 또 일해야 되는데 오늘 밥 안 먹을래.
먹고 싶은 음식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먹을 때 가장 맛있는 법.
그래서 오늘은 주방 앞에서 부르던 칼과 불의 향연을 펼치지 않고, 소파 위에 누워본다.
편안하고 아늑하다. 이제 여기서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만 시키면 지상낙원이다.
각종 배달 어플들을 열어본다.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화면을 뚫고 나올 듯이 배고픈 자를 유혹한다.
머리를 많이 썼던 일주일이었으니 오늘은 배에 기름칠을 좀 하기로 한다.
일요일 저녁인 만큼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적당히 기름졌지만 속이 편안한 음식, 곧바로 몇 가지가 리스트에서 빠진다.
일요일은 도전을 피해야 하니, 익숙하지만 평시에 잘 먹지 못했던 음식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급속도로 후보들이 걸러지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너무 비싸지 않고, 치우기 좋아야 진정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즐거운 하루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맥도날드 감자튀김이다.
감자를 얇게 썰고, 깨끗한 기름에 넣고 튀긴 후 소금을 내키는 만큼 뿌리면 완성되는
짭조름하고 바삭바삭한, 그리고 단순한 결정체.
육식의 이름을 띈 엄연한 채식이기에 양심의 가책 없이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매력덩어리.
뿌려주거나 찍어먹는 소스에 따라 얼마든지 맛을 한번 더 바꿀 수 있는 변신의 귀재.
힘들고 지쳐있던 한 주를 달래고, 다음 주를 용감하게 맞이하기 부족함 없는 선택이다.
플레이팅 (Plating)은 따로 필요하진 않지만, 플레이팅 (Play-ting)은 필요하다.
일요일 저녁이라 TV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노트북을 켠다.
넷플릭스의 새 요리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눈에 들어온다. 맛있는 식재료, 셰프들의 화려한 손놀림과 색감까지 예쁜 요리들까지.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하지만, 먹고 있는 음식보다 맛있어 보여서 오늘의 만찬이 아쉬울 것 같아 아껴놓기로 한다.
결국 음식과 마찬가지로, 놀거리도 익숙한 무한도전 시리즈로 넘어간다. 이제, 실컷 웃으며 놀 준비 끝.
추위가 가득했던 일요일 저녁은 배달 음식이 무사히 온 것마저 다행스럽게 만들었다.
감자튀김은 조금 눅눅하고, 함께 온 햄버거와 너겟은 조금 식었지만 이 정도면 선방했다.
드디어 언박싱 시간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봉지를 찢고, 바로 입 안에 대여섯 개 넣은 감자튀김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입에 넣는 순간 바로 퍼지는 적절한 기름기와 짭조름함은 소금장마냥 익숙하고 편안하다.
단순하면서도 표준화된 레시피에서 우러나오는 맛은 버거킹의 두꺼운 매력, KFC의 케이준 양념마저 거뜬히 뛰어넘는다.
눈도 즐겁고, 부지런히 손이 움직일 때마다 입이 즐거워지니 선순환의 연속이다.
눈과 손, 입이 즐겁다 보니 20분도 안 되어 화려했던 감자튀김 힐링 파티가 끝났다.
돌아오는 한 주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