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밖의 생존자가 써 내려가는 심리상담기, 우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11월 2일, 자고 일어났더니
나의 글이 인터넷 세상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공중파 뉴스에도 등장한 나의 글은
주요 포털에 검색하면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로 커뮤니티로 퍼다 날랐고,
내 글에 대해 저마다의 반응을 보내고 슬퍼했다.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자그마치 50만 뷰였다.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가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살고 싶어서, 살아내고 싶어 써 내려갔던 나의 심리 상담기.
10월 29일 저녁 10시.
이태원 세계 문화 음식 거리에서 놀고 있었던 사람이자,
사람들이 죽어가던 사고현장 바로 한 발자국 뒤에서
서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가까스로 구조되어 살았다고 생각도 못했던 사람,
그게 나였다.
나는, 내가 300명의 사망자와 사상자에 들지 못하는데 ,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왜 나의 일상이 무너지는 건지
울부짖으며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서 물어봤던 첫마디.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가인가요? >
그렇게 나의 첫마디가 내 글의 제목이 되었다.
글을 쓰시던 분이니 심리상담 기를 글로 적어내 보는 것도
치료에 도움이 되겠다던 조언에 따라
써 내려갔던 10편의 글이 50만 명이 넘게 읽은 글이 되다니.
이런 게 글의 힘이라는 걸까.
아니면 내가 살아내 보겠다는 처절함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걸까.
각종 언론사의 인터뷰가 쏟아지고, 특별 기고문으로
신문사에 이 글을 연재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도 받았다. 한겨레 신문사와 오마이뉴스에 나의 글이 기고되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추모와 애도를 한다고 생각했다.
내게 기고를 부탁해 온 기자님께, 글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글에 열광하는 것을 처음 본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를 다했다고 굳게 믿었다.
벌써,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
슬픈 11월을 석 달에 걸쳐 지나왔다.
내 삶,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들이 많이도 바뀌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억해 달라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100일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이 잊히고,
언론사들의 관심이 사그라지는 것을 스스로 절실히 느낀다. 서운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러다 어느 날,
인상적인 악플과 선플 하나씩을 보게 되었다.
'정부는 이 글을 당장 삽화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뿌려라'
'제목은 무슨 브런치 글 제목처럼 지어가지고는 ㅉㅉ'
우스웠다, 모든 것이.
어떤 사람은 이 글이 멀리 퍼져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데 어떤 사람은 이 글의 제목부터가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 정 반대의 반응.
글이 너무 슬프지만,
솔직히 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msg를 많이 가미해 쓴 글 같다는 대댓글과
생존자 까지는 아니고 그 현장에서 자세히 목격 정도 한 사람이 쓴 것 같긴 하다는 반응들.
이런 반응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도 내 글이 가짜였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상담을 가면 선생님을 붙잡고 묻는다.
저 , 제가 정말 참사 생존자예요? 왜요? 나는 왜 하필 이런 일을 겪었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브런치 제목 같다는 내 글의 제목이 내가 지어낸 제목이 아니라, 상담 선생님한테 진심으로 내 입을 통해 물어본 첫마디였다는 것을 대중들이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라니,
실로 얼마나 큰 참사인지 다시금 실감한다.
당신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그때 그 상황은 거짓말처럼, 영화처럼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내가 겪은 것이 진짜 사실인가 싶을 정도의 엄청난 참사였다는 것을, 역으로 반증하고 있었다.
브런치 글 제목 같다니,
그래 그렇다면 브런치를 통해 글을 올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용기를 내어 인터뷰도 하고, 글도 쓰고 목소리도 내었던 것은 세상이 작게라도 변하길 바랐던 마음이었던 것이다.
용기를 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목격한다면 나는 아마도 다시는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용기를 냈던 나의 선택을 평생 동안 후회하며,
역시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고, 튀지 않게 살아가겠다며
존재를 숨기기 급급한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가겠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외면하고,
지겹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고통스럽다.
내가 흘린 눈물도 한 트럭인데, 유가족들은 어떨까.
나는, 자꾸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 일지를 고민하다가
한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차분히 써내려 간 글을 바탕으로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지, 영화라는 수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게 해야지. 용기 내어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해야지.
그렇게 세상의 변화에 도움이 되어서,
내가 낸 용기를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는 걸까,
우린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처음 글을 연재할 때도 이런 대목이 있었다,
'누가 아나요, 이 바람이 언론사를 통해 알려져서 도움이 될지'
그때도 그랬으니 다시 한번 바라며 무엇이든 해본다.
우린, 영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