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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May 15. 2023

허상의 스펙터클 틈새의 작은 기적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2022)


<놉>은 스펙터클을 경계하는 영화인가?


영화 <놉>(2022)은 그 자체로 엄청난 스펙터클이다. 진실을 숨기고 기이함을 보이며 몇 겹으로 미스터리를 엮어가는 조던 필 감독은 그야말로 스펙터클의 마술사다. 그러나 “내가 더러운 걸 네게 던져 널 능욕하여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는 나훔서 3장 6절을 인용하며 전하는 메시지는 언뜻 스펙터클을 경계하는 듯 보인다. 영화를 이루고 있는 두 축이 UFO 혹은 괴생명체를 찍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침팬지로 인한 살육의 현장을 추억하고 흥밋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잔인하게 사냥당하는 내용 아닌가. 눈앞의 스펙터클에 현혹되어 시선을 빼앗긴다면 큰 코 다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구경거리들의 반란이다.


스펙터클의 본질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기만하는 것이다.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들 사이에서 우리는 단지 기적의 잔상만을 담을 수 있다. <놉>이 가리키는 방향은 스펙터클을 경계하는 것보다 스펙터클의 포착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에 가깝다. CCTV와 발달한 사진, 영상 기술들로 괴생명체를 포착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인물들처럼 닿으려 할수록 멀어진다. 또한 지금 시대는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시대다. 우리는 모두가 카메라를 들 수 있고, 누구나 스펙터클이 될 수 있다. 스펙터클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며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상함이다.



OJ가 스펙터클이 되는 과정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나 역시 상대에게 보일 수 있음을 감수하는 일이다. <놉>은 시선에 의해 힘의 우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발생하는 스릴을 활용한 호러 영화다. 진 재킷은 구름 뒤에 숨어 6개월간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진 재킷의 시선을 느낀 주프는 그를 ‘뷰어’라 명명한다. 보는 주체인 ‘뷰어’를 스펙터클의 위치로 격하시킨 주프는 바로 피의 저주를 받는다. 그 시선이 ‘뷰어’에게 힘을 준다.


동생 에메랄드와 달리 OJ는 카메라에 서는 게 어색한 사람이다. 말을 팔아 한 몫 챙길 생각을 하는 말 그대로 돈에 눈이 먼 아버지와 달리 OJ는 그저 말을 돌보는 일에만 열중한다. 아버지가 말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고, 에메랄드가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라면 OJ는 말 럭키의 입장과 가깝다. 카메라든 사람이든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결국에는 촬영장에서 퇴장당한다.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처럼 헤이우드가 사람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말에게 밀려나 있다. 진정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에메랄드의 첫 번째 말이 될 뻔한 ‘진 재킷’은 <스콜피온 킹>에 출연하게 되며 무산되었다. OJ는 유일하게 에메랄드를 봐주는 존재였다. 이 사건은 에메랄드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진 재킷은 아버지가 OJ에게 맡긴 첫 번째 일이기도 하다. 남매의 첫 번째 스펙터클과도 같은 진 재킷의 이름이 괴생명체에 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 재킷은 헤이우드 남매가 물려받은 의무와 책임 그리고 트라우마다. 괴수 진 재킷을 찍음으로써 에메랄드는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가부장제 질서를 전복한다. 에메랄드는 찍히는 존재를 너머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포착해 냈다.


이는 OJ의 바라봄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지막 말을 탄 흑인 기수 OJ와 우물 사진관에 찍힌 진 재킷의 사진은 등치 된다. 마침내 OJ는 그 자신이 스펙터클이 되었다. 조던 필은 드디어 말이 아닌 흑인 기수 OJ를 스펙터클로써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유산이다.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이크를 탄 흑인 여성 에메랄드 역시 주체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시네마의 주인공이다.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OJ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에메랄드는 머니샷을 건졌을까?


진 재킷을 찍으려는 여러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반전기장을 일으키는 진 재킷에 의해 각종 디지털 기록 매체는 무용지물이 되고, 홀스트의 아날로그 필름의 상태도 보장할 수 없다. 놀이공원의 우물 속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괴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진 재킷은 형태를 변형하는 생명체다. 형체가 불분명한 그 사진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머니샷이 될 수 있을까?  에메랄드의 승리는 머니샷이 아니다.


영화의 가장 처음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시트콤 <고디가 왔다>의 촬영 중 침팬지가 흥분해 참혹한 사건이 벌어진다. 직접적인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피칠갑이 된 채 지친듯한 침팬지의 모습과 그 뒤에 중력의 작용을 벗어난 듯 기이하게 똑바로 서 있는 신발만 보게 된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시트콤 <고디가 왔다>도 아니고, 침팬지가 날뛰는 살육의 현장도 아닌 그 신발이다. 그 기이한 ‘나쁜 기적’은 주프를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렇다면 <놉>에서 그 신발의 위치에 있는 것은 ‘저 너머 먼 곳’에 서 있는 말을 탄 OJ의 모습이다. 조던 필은 그 모습을 위해 이 모든 스펙터클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디의 살육과 진 재킷의 살육은 <놉>의 머니샷이지만, 허상의 스펙터클 사이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어린 주프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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