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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Aug 18. 2023

삶과 전쟁 속 파멸의 연쇄작용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2023)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별의 죽음과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 심취해 영국과 독일로 떠난다. 타지 생활을 하며 미국, 특히 뉴멕시코를 그리워했던 오펜하이머에게 그의 꿈인 물리학과 뉴멕시코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다. 별과 우주를 좇던 과학자의 두 눈과 스크린은 파멸과 폭발의 빛으로 가득 찬다. 3년간 동료들의 노고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마침내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서 화려하고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을 때, 그는 미래를 보았다. 오펜하이머는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세계를 본다. 원자폭탄의 개발과 성공을 위해 물리학자이자 행정가 동시에 과학 세일즈맨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되자 아이를 부정하는 부모가 된다. 프로메테우스, ‘먼저 생각하는 이, 선지자’란 뜻을 가진 신화 속 인물은 파멸의 연쇄작용을 보았던 오펜하이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본에 두 차례 원자폭탄을 투하하며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강한 무기의 등장은 더욱 강한 무기의 출현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핵폭탄은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불러왔다.  


영화의 전반부는 원자폭탄을 만들기까지의 여정, 후반부는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정치적 삶과 청문회가 중심이 된다. 조합을 지지하고 공산당원들과 가까이 어울렸던 오펜하이머의 과거는 훗날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스트로스와의 정치적 갈등은 모든 것을 숨기는 쪽과 모든 것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쪽의 속성을 보여준다. 스트로스는 바로 옆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동료조차 속이는 치밀한 정치가다. 오펜하이머는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서로 모여 아는 것을 나눠야만 하는 과학자다. 자신이 진실이자 진리고,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과학자의 면모는 정치적 견해에서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와 로스앨러모스의 맨해튼 프로젝트 그리고 스트로스의 시점을 오가며 분열과 융합, 파멸의 연쇄반응을 플롯화한다. 인물이 살아오면서 선택한 크고 작은 일들은 삶을 분열시키고, 분열된 파편들은 또 다른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스트로스는 1954년 오펜하이머를 무너뜨렸던 청문회 사건의 여파로 장관직에 고배를 맛본다.


실제로 존재했던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조차 지워버린 여성관은 분명 시대에 뒤떨어졌다. 전기 영화인 만큼 실제로 사건과 인물이 존재하는데, 인물 구성에서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백델테스트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특히나 플로렌스 퓨의 팬이라면 실망이 큰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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