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런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SIA Jan 10. 2021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할 때, 가장 스파이더맨다운 답을 주는 영화

어딜 가나 그의 얼굴이 보여요.
출처: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태리어로 ''는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남자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관심 없다'는 표시를 할 수 있고, 대화 중에 '글쎄' 혹은 '몰라' 등의 말로 사용할 수도 있다. 단 한 단어 안에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보'라는 말처럼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후의 불안정한 세상을 보여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보'를 찾아가는 여정과 같았다.


다음 아이언맨이 누구냐는 질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대중의 질문은 스파이더맨에게 부담이었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인 동시에 평범한 고등학생이기도 한 피터는 마냥 자기 또래 친구들처럼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인 토니 스타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회피하려 해도 매 순간 나타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그때 즈음, 피터는 정체불명의 엘리멘탈을 대적하는 과정에서 미스테리오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서 토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엉겁결에 토니가 남긴 이디스를 그에게 넘겨주는 실수를 하고 만다.


모든 게 미스테리오의 작전이었음을 깨닫게 된 스파이더맨은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화를 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위기에서 구해줄 히어로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자리가 너무 무섭기만 하고, 실수를 저지르기만 한다. 하지만 해피가 해준 말처럼 토니 역시 늘 완벽했던 것은 아니며 항상 천방지축에 문제와 사고를 일으키곤 했었다. 그게 스파이더맨 당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란 소리다.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정리해나가기 시작하는 스파이더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전진하지 않고 후퇴하려 했던 그가 그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인 능력인 육감을 믿으며 미스테리오가 만든 환영 속에 뛰어든다.


어찌 보면 미스테리오가 만들어낸 환상은 영화 속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제껏 보아왔던 괴물에 버금갈만한 무서운 빌런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를 바라보면서도 '이건 진짜가 아니야'라며 뛰어드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정신적인 면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기에 지금껏 보아온 모습 중에서 가장 멋진 발전이기도 했다.


이에 더 나아가 그 두려워하는 것을 담고 있는 환영 자체는 실질적으로 이디스, 즉 토니가 물려준 기술력, 토니의 모든 것이라는 점에서 그 환영과 싸워서 이겨내고 그 이디스를 되찾는다는 것 자체가 스파이더맨으로서 아이언맨의 빈자리를 대신할 준비가 되었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결국에는 아이언맨과 싸우는 스파이더맨이 아니었을까. 그를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이니까.

출처: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무엇이 진짜 일까, 가짜일까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그렇고, 좋아하는 이의 마음이 그렇고, 스파이더맨과 피터 사이의 한 소년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타노스와 격돌한 이후의 지구의 모습과 같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은 스크린을 조금 벗어난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나타나곤 한다. 이 마블 세계관이 맞이한 국면 자체가 그러하다. 원년 멤버인 아이언맨을 비롯한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위도우가 떠나간 빈자리와 함께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마블은 그들의 정상을 한 번 더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 국면에 서서 이를 바라보는 마블을 사랑하는 모든 관객에게도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는 미스테리오와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치 않다. 사람은 혼란스러울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괴물을 무찔러야 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줄 희망이자, 기둥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이언맨이 떠나간 빈자리를 채운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영화가 내놓아야 할 답이기도 했다.


스파이더맨의 이야기가 내놓는 답은 우리의 눈 앞을 가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들로 우리 자신을 위축시키고 마는 그 환영, 실체 없는 상상을 없애버리고  안에 가장 중요한 핵심을 찾아가자는 이다. 친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곧바로 그들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걸 조종하는 미스테리오를 찾아내고야 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도 역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마는, 진짜와 가짜를 헷갈리게 하는 그 미스테리오라는 존재를 찾아내야 한다고 답을 주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미스테리오가 무엇인지는 우리도 제대로 알 수 없고, 스파이더맨도 제대로 알 수 없다. 해봐야 이디스에게 마지막까지도 이게 진짜냐고 물어봐야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직 제대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유일한 한 가지, 그 미스테리오를 찾아야 한다는 계획은 수립된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상상들로 우리의 앞을 가리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 안에 숨어있는 나의 진심을 찾는 것.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정한 것이다.


블랙 달리아 목걸이. 피터가 MJ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의 상징이었다. 그 목걸이가 비록 산산조각 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피터의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산산조각 난 목걸이에도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전달되듯이 모든 건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에 담겨있는 진심에 있다.


무섭고 두렵다.

운명이라 믿었고, 이 길이 내 길이라 믿었던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순간에 만난 이 영화는 아주 시의적절했다. 내가 하려던 일이 실패로 돌아갈 때, 이를 둘러싸고 나를 방해하는 무서운 존재들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변명처럼 내놓고,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라며 나를 부정하는 그 모든 것들, 나를 뒤집어 씌우는 그 무의식들 자체가 나를 가로막는 환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문제의 본질은 그 환영들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데. 그 환영을 조종하는 그 이름 모를 무언가에 있는데.


그 이름 모를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스파이더맨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놓은 답처럼 우리는 그 환영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미스테리오를 찾아야 한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음에 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 앞을 가로막는 그 무수한 두려움과 포기, 회피로 마무리짓는 그 변명거리들의 악순환을 과감히 헤쳐버릴 수 있는 '보'를 찾았다.


인생에 있어서 두려워하는 것들.

사실 그것들은 환영일 수 있다.

이제 나는 걸어갈 수 있다.


나의 미스테리오를 찾아서.


평점: ★★★★☆ 4.5



매거진의 이전글 <프랭크 & 롤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