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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Sep 18. 2021

<데몰리션>

슬픔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다시 하긴 너무 늦었을까요?
출처: 영화 <데몰리션>

파괴는 거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슬리는 것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무감각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교통사고로 아내가 죽었다. 심지어 그 죽음을 코 앞에서 목도하였음에도 데이비스는 줄리아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방인이 된 것처럼 세상과 동 떨어진 것만 같은 이 남자. 타인의 슬픔에 함께 울지 못하고, 마비라도 된 듯 이 일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 병원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판기 앞에 섰다. 돈을 넣고 초콜릿을 선택했는데 고장으로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심기가 거슬린 그는 챔피언 자판기 회사의 고객센터에 편지를 보낸다. 샌 안드레아스 병원의 714번 자판기 고장에 대한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편지에 단순한 환불 요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나열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는 익명의 관계자에게 편지를 부침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차에 그의 편지 네 통을 받아본 캐런이 그의 사연에 눈물을 흘렸다며 연락해온다. 이를 계기로 데이비스는 그녀와 그녀의 10대 아들인 크리스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감정을 낯낯이 분해하기를 시작한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라는 장인어른의 말이 불씨가 되어 데이비스는 생전에 줄리아가 고쳐달라던 냉장고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결국 완전히 부수고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그는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모든 것들을 해체하게 되고, 급기야 공사장 인부들이 건물을 철거하는 현장에 가서 제발 돈이라도 줄 테니 내가 그 일을 하게 해 달라며 부탁한다.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처럼 무언가를 계속해서 부수며 그는 미친 듯이 방황한다.


데이비스가 물건이나 건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해체하는 행위는 일종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메타포, 메타포… 그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긴 했는데 무심하게 본 걸지도… 모든 게 은유가 되어버렸다. 난 나무를 뿌리 뽑은 태풍, 저기압과 충돌한 한랭전선.’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이 거슬리는 감정, 무언가 엇나간 느낌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그는 충동적으로 문제의 근원을 찾고자 하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 시간이 쌓아 올린 어떤 상징들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대체한다. 영화 중반부 출근 거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이비스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거꾸로 리와인드되는 연출 자체가 타인의 시선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파괴적인 행위가 오히려 그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됨을 알 수 있다.


그의 탈선과도 같은 행보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크리스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메타포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데이비스에게 ‘매미나방이 나무를 다 망친다’고 말하면서 처음에는 애벌레에 불과하지만 점점 나뭇잎을 갉아먹고 이후에는 알을 깐다고 했다. 흘러가듯이 언급되었던 이 상황은 이후에 데이비스가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을 때, 인서트 된 장면에서 은유적으로 반복된다. 검사를 해보니 그에겐 심장이 없고, 그게 매미나방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정말 데이비스의 심장이 매미나방 때문에 없어졌다거나 데이비스의 단순한 망상이라기보다는 나무를 초장부터 잘 관리하지 않으면 매미나방이 꼬이는 것처럼 그가 망가진 데에는 그의 유년시절, 그의 마음속에 조금씩 기어 다니기 시작한 절망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는 데이비스의 어린 시절이다.


캐런의 말에 따르면, 크리스는 ‘15살인데 12살로 보이고 행동은 21살 같은’ 아이다. 크리스는 일종의 사춘기를 겪고 있고, 데이비스와 자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마트에서 크리스가 데이비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밝히자 데이비스는 약간 당황한다. 그는 아이의 상황을 알고서도 피하거나 그건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나무라지 않는다. 그의 입에선 마냥 이상적이라기보단 솔직하고 현실적인 충고가 나온다. ‘너의 상황은 아주 힘들 게 분명하다. 일단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성애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어른이 되면 다른 도시로 떠나라.’ 그의 답변은 어쩌면 그가 크리스와 같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세상의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기준과 일치하지 않을 때 그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유추하게 한다. 그가 크리스처럼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였음에도 그 사실을 억누르고 세상과 타협하려 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크리스로 은유되는 데이비스의 어린 시절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숱한 인내였고, 다름에 대한 무력함이었고, 어울리기 위해서 나를 포기해야 하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마음속을 기어 다니는 이 불편한 원인들을 애써 모른 채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아픔이 계속되고, 그 상처가 계속해서 덧나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딱지가 생긴다. 마치 죽어버린 피부처럼.


크리스가 어린 시절의 데이비스의 메타포라는 결정적인 암시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 제시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는 무언가가 폭파되고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던 데이비스에게 선물이 있다며 어떤 장소로 가보라며 편지를 썼다. 강 너머의 높은 빌딩을 폭파시키는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마치 새해를 기다리는 것처럼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있었다. 건물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데이비스를 괴롭히던 지난 시간들은 무너져 내렸고, 그는 그 순간부터 다시 그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눈꺼풀에 입 맞춰주던 그 평온한 시절을 떠올리며 데이비스가 던졌던 질문, ‘다시 하긴 너무 늦었을까요?’에 대한 답이었다. 이는 크리스가 데이비스에게 주는 선물이자, 과거의 데이비스가 현재의 데이비스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크리스의 목소리로 내레이션 되는 편지 글은 추신으로 마무리되지만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기를 기다리다 보면 데이비스의 음성으로 ‘데이비스 C. 미첼 드림’이라며 편지를 보낸 이가 누군지 밝혀진 셈이다. 고장 난 냉장고, 고장 난 자판기, 고장 난 전등불… 데이비스는 고장 난 자신을 부수고 무너뜨렸다. 그의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비로소 그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과거를 마주한다.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자,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화해를 하는 것이다.


영화 <데몰리션>은 마음이 폐허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자기 관리는 철저해도 자기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게 점점 무심해졌던 데이비스라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근원에는 슬픔이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서 내 슬픔을 죽이면서 살아온다. 내 감정을 숨기고 조금씩 다른 나로 살아오면서 마치 심장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이다. 삶은 쉽지 않다. 울고 싶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또 그들이 상처 받을까 봐 그 와중에 모든 게 못난 내 탓이라며 각주를 단다. 타인을 바라보며 살다가 내 마음은 조금씩 망가져간다. 영화는 데이비스라는 자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위로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지금 당신이 세월을 후회하고 있다면 있는 힘껏 무너뜨려라도 보자.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고 기쁠 땐 마음껏 기뻐하자.


평점: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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