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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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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Aug 31. 2021

<테넷>

실패와 절망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영화

터지지 않은 폭탄.
아무도 몰랐던 위험.
그게 세상을 바꿀 진짜 폭탄이지.
출처: 영화 <테넷>


<메멘토>에서부터 <인셉션>,<인터스텔라>,<덩케르크>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세계관을 한층 더 견고하고 흥미롭게 이끌어가기 위해 시간이 가지는 모든 특성을 십분 활용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테넷>에서는 아예 시간을 거꾸로 돌려버렸다. 다가올 전쟁의 파편이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바로 인버전된 물건들이었다. 인버전이란, 엔트로피 흐름을 이용해 어떤 물체의 시간을 반대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테넷 요원 주도자는 이 인버전을 통한 미래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할 임무를 맡게 된다. 그가 이 임무를 완성해야만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인버전을 통해 세상을 망가뜨리려는 사토르에 대항해 주도자와 닐 역시 인버전을 이용해 현재(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을 넘나 든다. 그 과정 속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하고, 거꾸로 흐르는 시간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온전히 두어야 한다. 놀란 감독의 여느 영화만큼이나 복잡한 전략들이 펼쳐지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관객이 쉬이 이해하지 못하리란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리하여 영화 초반부 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미리 전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요.’


사람의 관심은 불발탄이 아닌 터진 폭탄에 쏠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의 역학을 거슬러 세상을 지켜내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던 ‘시간’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 주목한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일에 승부수를 건다. 냉전, 절망의 눈빛을 가진 한 여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불안과 적막. 이 고요는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조가 아니라 평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다.


현재에서 그저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시간을 되돌린 바로 그 순간들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모든 장면들은 나를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일어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하는 반복 해서 등장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인물들은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을 걸어가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택한 최선의 선택들이 부질없이 무력한 것이 되나.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왜 자신이 주도자인지 그 이유조차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맞서 싸우지만 그 길의 끝에서야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더 나아가, <테넷>은 시간의 기로에 서서 인간의 믿음을 이야기한다. 시간을 앞으로도, 뒤로도 오갈 수 있는 예측불가의 상황들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람이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도 반드시 선의의 행동을 하리라 믿을 수 있는 그 사람. 그리고 반드시 그런 일을 해내리라는 믿음.


미래에 세상이 무너지고 죽음을 자처하고 싶을 만큼 불행한 순간이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라면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평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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