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하는 순간에도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이라도 그 영화에 출연해야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있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아서 다행이지만.) 그래서 나는 감상할 작품을 고를 때 배우에 의지를 많이 한다. 그 작품을 선택한 그의 안목,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로 변신할 그의 연기력, 익숙한 매너와 신뢰로 기꺼이 나를 이 작품으로 인도해주리라는 믿음이 나에겐 필요하다.
영화 속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내던져져도 헤매지 않게 나를 딱 붙잡아주는 그런 사람. <미션 임파서블> 속 톰 크루즈가 그런 배우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미션들을 수행해내는 비밀 조직 IMF의 이선 헌트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제는 톰 크루즈가 그 ‘미션 임파서블’의 상징이 된 것만 같다.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은 시리즈의 무려 6번째 영화이고,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시리즈를 이끌고 나가면서 매번 모든 스턴트를 스스로 소화해내고야 만다. 그는 건물을 타고 오르거나, 건물 사이를 뛰어넘거나, 이륙하는 비행기에 맨 몸으로 매달리거나,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는 등 관객들을 놀라게 할 만한 미션들에 도전하고 또 그걸 아주 멋있게 해낸다. 지금까지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좋아하고 찾아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가 모든 액션들을 직접 했음을 알고 있을 테고, 바로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른 액션 영화에서는 흔한 클리셰로 취급될 수 있는 차 추격씬이나 격투씬조차도 더욱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특히 이 영화 속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이선이 15분 내에 워커가 가지고 있는 기폭 장치를 꺼야만 했는데, 가파른 절벽에서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임무를 완수한 이선이 그의 동료들에게 던진 한마디가 나를 미치게 한다.
‘평소 같았어.’
분명히 이전보다 더 아찔하고 어려운 미션을 해내고서, 아무리 이선 헌트(그리고톰크루즈)라 하더라도 세월의 풍파를 비껴갈 수 없을 터인데도 평소 같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노련함을 제하고서라도 몇 배의 노력을 해야만 가능한 것일 테다.
그를 통해 불가능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불가능한 것들 사이에서 기어이 길을 찾아내는 이 남자. 남들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선과 그를 연기하는 톰 크루즈를 보면서 영화 속의 목숨이 오가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만나곤 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내가 이제껏 포기하고 말았던 것들이 실은 불가능을 탓하며 지레 겁먹고 도망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현시키는 방법 역시 다르다. 이번 시리즈에서 이선의 적수로 등장했던 워커는 원하는 걸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있는 전부를 죽여서라도 그렇게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다. 반면, 이선은 그와 다르다. 자신의 오랜 동료 루서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를 살리고 코 앞에서 핵무기를 놓치는 선택을 한다. 자신으로 인한 온갖 위협으로부터 줄리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 지켜주고, 그녀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세상과 싸운다. 그러니까, 이선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영원히 먼 길을 돌아서라도 모든 걸 얻어내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힘든 길을 계속해서 선택하고 돌파한다는 건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지는 것도 같다. 그에게 마지막 미션이 주어진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끝까지 살아남는 것. 그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줄리아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존재를 통해 힘을 얻는다. 나만 지치지 않는다면 불가능이란 없고, 상생의 길 역시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그가 끝까지 살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