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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블랙 백>

모든 수를 보여주지 않아서 우아하고 절실할 땐 과감해서 더 섹시한 영화

by FREESIA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날 위해 누굴 죽일 수도 있어? 조지.
영화 <블랙 백>

정보국의 베테랑 요원인 '조지'는 정보국의 비밀 무기인 '세버러스'가 내부 스파이로 인해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일의 용의자 다섯 중 범인을 찾아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자칫하면 그 위험한 무기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 그런데 그 용의자 중에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캐슬린'의 이름이 있다. 조지는 직업적인 이유로 아내와 사이가 틀어져버린 동료 '미첨'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결국에는 아내가 이해해주지 않겠냐'는 식의 말을 차갑게 내뱉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이제는 자신이 아내를 감시하고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며 무서운 다짐을 한다.


일주일 내에 스파이를 찾기 위해 조지가 쓴 전략은 다름이 아니라 용의자 모두를 한 테이블에 모으는 것. 저녁 식사에 초대해 직접 요리한(그리고 약간의 트릭을 가미한) 음식을 대접하며 필요한 단서를 모은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모든 증거는 캐슬린에게 향하게 되는데, 과연 중요한 임무를 맡은 요원이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서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영화 <블랙 백>

<블랙 백>은 94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 마치 조금 긴 분량의 드라마 시리즈 1화를 본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이 부부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 지를 매우 명료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잘 보여주었으니 왠지 그 뒤에 계속되는 에피소드가 펼쳐질 것만 같은 묘한 미련도 남아있다. 감각적인 연출 방식도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조지가 조용한 호수에서 배를 타고 낚시릴을 천천히 돌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릴이 돌아가는 소리와 회상되는 장면들이 마치 기억 속의 필름을 되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의 장면들에서도 낚시나 호수라는 공간으로 하여금 조지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해도 그런 섬세한 비유가 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게 아닐까.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반복해서 듣고 있는 사운드 트랙 역시도 중독성이 있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분위기가 이 영화를 더 섹시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합도 주목할 만하다. 조지 역의 마이클 패스벤더는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너지는 감정들의 간극을 잘 보여주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어쩌면 가장 냉철하고 차가워 보이는 조지보다도 더 내면이 강한 사람인 캐슬린을 잘 연기했다. 왠지 상대가 알고 있다는 것 마저도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 그래서 더 알고 싶게 만든다!

영화 <블랙 백>

'블랙 백'이란 영화 상에서 '발설할 수 없는 기밀사항'을 말할 때 쓰는 은어로 그 자체로만 봤을 때는 스파이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과 비밀스러운 요소를 자극하는 핵심적인 단어로 보이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는 조지와 캐슬린, 두 사람이 요원이라는 신분 이외에도 부부 사이라는 지점에서 그 의미가 더 미묘하게 느껴진다. 속고 속이는 관계,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치밀하게 의심하게 되는 갈등을 요원이라는 직업,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과 동시에 연결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관계를 다룬 시도는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조직의 일급 킬러였던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나 전직 요원과 경찰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크로스>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두 주인공이 서로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러한 작품들과 달리 <블랙 백>에서는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아슬아슬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스파이 첩보 스릴러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다소 '직업이 요원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할까'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 등장하는 정보국 사내 커플은 주인공 부부를 포함해 셋이나(그날 식사자리에 초대받은 용의자 4명이 모두 커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지'가 명확한 이 영화는 작위적인 상황이 노골적으로 연출되는 면도 기꺼이 감수한다. 마치 조지가 스파이를 찾아내기 위해 일일이 뒷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과감하게 그 모두를 한 데 모은 것처럼 말이다.

영화 <블랙 백>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구절절하게 각자의 모든 사연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는 각 연인이 가지고 있는 트러블이나 각 캐릭터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 꽤나 구체적이고 탄탄하게 설정한 편이지만 그 이상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 연출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심지어 주인공인 두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조지는 사랑을 배신했던 요원 출신 아버지를 직접 끌어내렸을 만큼 아버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고, 캐슬린의 경우 어머니처럼 되기 싫다는 말을 꺼내며 돈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흔들림 없어 보이는 그녀가 사실 상담에서 악몽을 이야기 할 만큼 정신적으로 불안한 면도 있는 것으로 언급되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정석적으로는 이런 설정들이 소위 떡밥이 되어 후반부에 풀리는 실마리로 회수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의심스러워 보이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내보이는 것이 일부러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몇 가지의 그럴듯한 함정으로 자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상 단호하게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 구차한 것들에게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영화 <블랙 백>은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철두철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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