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룸 넥스트 도어>
베스트셀러 작가인 잉그리드는 뉴욕의 사인회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절친이었던 마사가 암에 걸려 지금 병원에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랜 지적·예술적 동반자였고 같은 남자를 순차적으로 사귀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는데 어쩌다 우리는 몇 년간 연락조차 안 하고 살았던 걸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주인공 마사를 뉴욕타임즈의 종군기자로 설정한 것은 매우 설득력 있다. 전쟁터를 누비며 기자로서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녀는 이제 암 투병이라는 새로운 전쟁터로 들어가 싸우게 된 것이니까. 기대했던 치료가 실패로 돌아가자 마사는 암에게 끌려다니느니 스스로 죽음의 시기와 방식을 정하겠다고 결심하고 잉그리드에게 그 여정에 동반해 줄 것을 부탁한다. 안락사(자유죽음)에 필요한 약은 다크웹을 통해 이미 구해 놓았고 법률적인 문제도 대책을 마련해 놓았다. 이미 다른 친구 두 명에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혈육인 딸은 타인보다 냉담하기에(“그건 당신의 선택이죠.”)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아이 생부에 대한 비밀과 마사의 ‘일 중독’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만들었다.
마사를 찾아간 잉그리드는 그의 계획에 찬동하고 기꺼이 친구의 마지막을 ‘옆방에서’ 지켜줄 것을 결심한다. 강인하고 치밀하고 주도적인 마사 역의 틸다 스윈튼을 보면서 나는 존 버거와 그가 함께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사계>를 떠올렸다. EBS에서 우연히 그 영화를 보고 정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와 배우라는 직업적 경계를 뛰어넘어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을 나누는 두 예술가의 특별한 우정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틸다 스윈튼은 단순한 배우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존 버거의 사상과 문학적 깊이를 배우적 감수성으로 소화하고, 이를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대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예술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들의 토론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철학적 성찰로까지 이어진다. 틸다 스윈튼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지적이며 감각적인지, 그녀의 연기와 예술적 교감이 지식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시네21>에서 줄리앤 무어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알모도바르 감독은 <룸 넥스트 도어>의 시나리오를 스윈턴에게 이메일로 보내며 “내가 생각해 둔 배우가 있긴 하지만 다 읽은 후 누가 잉그리드를 연기하면 좋을지 알려 주세요”라고 했고 스윈턴은 시나리오를 다 읽자마자 줄리앤 무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물론 알모도바르가 미리 생각해 둔 배우 역시 줄리앤 무어였다. 코엔 형제의 영화 등에서 보여 준 그의 연기력과 예술적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낙점이었다. 이런 환상적 배우 궁합에 ‘스토리와 색채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듣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감독이니 영화가 어찌 안 좋을 수가 있겠는가. 작가 싸인 옆에 자신의 동성 애인에게 전할 메시지 “다시는 안 그럴게”를 써달라는 독자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에 햇살이 쏟아지는 썬베드 장면까지 다 좋지만 나는 별장에 간 두 사람이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를 보며 함께 웃는 장면에서 웬일인지 살짝 눈물이 났다.
영화 중간에 잉그리드가 “이렇게 매일 먹고 자고 하다간 돼지가 되겠다”라며 혼자 스포츠센터에 가서 PT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엔 사소한 에피소드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중요한 시퀀스였다. 그는 젊은 코치에게 ‘몸이 너무 건강하면 나중에 숨이 끊어지기 힘들다’라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다가 결국 친한 친구가 죽음 앞에 있음을 고백하고 흐느낀다. 그때 코치가 말한다. 당신을 껴안아 주고 싶지만 요즘은 그러면 법적 소송 문제로 번질 수 있기에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미안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가 ‘터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정답게 집중하는 대화, 어루만지는 것 등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이다. 마사가 기사로 쓰지 못했던 스페인 동성애 수사들의 이야기나 자신이 전장에서 섹스에 탐닉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했던 것 등등이 이 한 장면으로 단박에 모두 이해되었다.
영화는 결국 암 투병이나 죽음의 선택 문제를 넘어 옆 방에 있는 사람, 즉 동반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나와 인생길을 같이 걸어주고 내 결정에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건 혈육이나 우정의 기간보다는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데 알모도바르 감독의 선은 분명하다. 이는 두 여주인공 말고도 데이미언의 입을 통해 우파가 득세하고 환경 파괴 등으로 암울한 미래가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그리드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희망은 사람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경찰서 심문 장면을 두고 변호사가 ‘광신도’라 한 것도 그 생각의 연장선이다). 데이미언 역을 맡은 존 터투로의 사려 깊은 눈동자도 잊을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와 시나리오 완성도도 놀랍지만 알모도바르 감독의 색채 감각은 가히 예술 그 자체다. 첼로 선율이 깔린 거의 모든 장면이 클래식 회화나 현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시사회가 끝났을 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리뷰를 쓰려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대여섯 번 졸면서 봤다는 분의 글을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영화가 지루해서가 아니라 그분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이다. 아니면 이런 주제의 영화를 잘 이겨내지 못하거나.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기 바란다. 이겨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너무 재밌고 고급스러운 영화임을 보장한다. 아마 올해의 영화가 될 것이다. 아니, 평생의 탑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