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 리뷰
2025년 봄의 화제작이었던 <콘클라베>를 뒤늦게 어젯밤 유튜브 영화에서 2,750원에 '대여'해 보았다. 보통 극장에서 놓친 영화는 기다렸다가 넷플릭스 등 OTT에서 보지만 그걸 기다리다 보면 열정이 식거나 너무 많은 다른 영화 리스트 때문에 질려 결정을 못하고 결국 먼 훗날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유튜브 영화'는 저렴한 가격으로 깔끔하게 한 영화에만 집중해 관람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다른 리뷰는 읽지 않고 '교황을 선출하는 걸 콘클라베라고 부른다'라는 사실만 알고 영화를 보았다. 콘클라베는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 ‘La Clavi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로마의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사실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갇혀서) 새 교황을 선출하는 100여 명의 추기경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콘클라베의 모든 과정을 감독하게 된 추기경, 로렌스로 랄프 파인즈가 나온다. 전 세계 천주교인들의 중심과 상징이 되는 인물을 뽑는 일이기에 이건 종교 행사라기보다는 정치 투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선거인단과 후보 모두 고귀한 성직자 신분이므로 등장물 하나하나에 엄격함과 거룩함의 외피를 씌웠다는 것이다.
선거는 팽팽하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알려진 천주교라지만 여기에도 진보와 보수가 갈리고 거기에다 개인적인 야망까지 부딪히기에 암투와 술수가 난무한다. 한 후보의 비리가 밝혀지고 또 다른 후보의 스캔들이 드러날 때마다 선거인단의 마음이 흔들리고 주도권이 휙휙 변하는 플롯은 총만 안 나올 뿐 여느 스파이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극본을 쓴 사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극본을 쓴 피터 스크로언이다(이렇듯 시나리오의 장인들은 영화마다 명대사와 긴박한 시퀀스 구성으로 작품에 자신의 인장을 찍는다).
누구는 교황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고 또 누구는 자신이 교황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때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요,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지혜를 모아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설득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고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누구나 방황하게 되어 있다는 메시지는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뜨거운 격려가 되었다. 이 밖에도 조용히 움직이던 아녜스 수녀(이사벨라 로셀리니)가 결정적일 때 추기경들 앞에 서서 한 칼 날리는 장면도 통쾌했다.
마지막에 의외의 인물에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경쟁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장면들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의 결론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일부 관객들은 '판타지'라고 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카타르시스를 위해 문학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카디널'이 추기경이라는 뜻이라는 걸 처음 알았고, 카메라가 오로지 성당 안에서만 돌아다니는데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카메라의 유려함을 돕는 건 사제들의 컬러풀한 의상과 날카로운 첼로 선율 등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되도록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이유도 큰 화면보다는 독립적이고 풍부한 사운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극장에서 보신 분들은 부럽고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강추다. 콘클라베, 재밌나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