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흔쾌히 서성이고 기꺼이 되어보는 사람

오은 시인의 보령시립도서관 인문학 여행 강연 후기

by 편성준


오은 시인은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합니다. 한 번은 문방구 앞에 놓인 조그만 오락기계에 붙어서 전자오락을 하고 있던 어린이들을 지켜보았답니다. 게임이 끝나자 오락기계 화면엔 'Game over'라는 글자가 떴겠죠. 오 시인이 다가가 "너희들, 게임 오버가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묻자 아이들은 "그럼요. 다시 하라는 뜻이잖아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어른들은 끝났다고 생각할 때도 마음이 맑은 어린이들은 '다시 시작하자'라고 거꾸로 생각할 줄 아는 겁이다. 저는 이처럼 작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에서도 시어를 발견하고 통찰을 이끌어 내는 오은 시인이 좋습니다.


지난주 보령시립도서관 '인문학 여행'의 주인공은 오은 시인이었습니다. '많이, 깊게 읽고 여러 번 쓰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오 시인은 예전 회사 다닐 때 독일 출장길에 낚시터에서 만난 부부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은 당시에 이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뭔가를 궁금해하는 데서 시가 탄생한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뭔가 벅찬 감정에 휩싸이면 새삼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느끼죠. 오 시인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날은 '일상 속의 비일상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인데 이런 걸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호기심이 충만해야 하고 호기심 끝에 질문이 나오는 법인데, 우리 사회는 어느덧 질문이 사라진 곳이 되었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몰라?'라는 비웃음을 당할까 봐 그렇답니다. 혹은 틀린 질문이라고 할까 봐, 빨리 끝내고 다른 데 가고 싶은 사람들을 붙잡는 역적이 될까 봐 그렇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한 게 있어도 그냥 가슴속에 묻어두거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오 시인은 아침, 점심, 저녁 중 점심만 한자로 병기할 수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다가 '마음에 점을 찍는다(點心)'라는 건 결국 아침의 각오를 점심에 한번 더 점검하는 시간이라는 뜻 아닐까 생각해 냅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거죠. 그는 어렸을 때 엄마와 극장에 갔을 때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던 꼬마 오은을 기억해 내고 시인은 '뭔가 궁금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늘 '흔쾌히 서성이고 기꺼이 되어보는 사람'으로 남으려는 거겠죠. 여름 낮에 오는 비를 '잠비'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는 그 옛날 고단했던 농부들이 낮에 오는 비를 핑계 삼아 낮잠을 잤겠지, 하고는 흐뭇해하는 사람. 그가 바로 오은입니다.


오은 시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다음 날 아침에 친구 집에서 자다가 "등단을 축하합니다."라는 <현대시> 원구식 주간의 전화를 받고 "등단이 뭐예요?"라고 질문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했더니 독서실 다닐 때 답답한 마음을 노트에 메모했는데 친형이 그걸 타이핑해서 공모전에 대리 응모한 거라고 하더군요. 시가 뭔지 등단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인이 되었으니 이 사람, 천재가 틀림없습니다.


보령시립도서관 대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문학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람을 다룬다'는 말을 하는 오은 시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 조심하라.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시도 농담처럼 쓰는 오은을 아무런 경계심 없이 쳐다보았습니다. 나이키 광고의 카피 'YESTERDAY YOU SAID TOMORROW'에서 오늘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좋아하는 오은에게 아낌없는 웃음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동네 도서관에서 평일 저녁에 이런 시인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목요일 저녁 일곱 시에 보령시립도서관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고마운 마음에 오은 시인을 모시고 '동대누나네'로 가서 소주 맥주와 함께 갈치조림과 박대구이 등을 마구 먹었는데 발 빠른 오은 시인이 술값을 먼저 내버렸지 뭡니까. 다음에 또 한 잔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해요. 오은 시인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심이 담긴 워크숍 후기가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