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화로운 나날들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의 [대부]가 서울에서 재개봉을 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1972년도에 미국에서 처음 개봉한 영화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첫 번째 재개봉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워낙 명성이 자자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은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날 나는 어쩐 일인지 서울공고에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 종원이와 함께 서울극장에서 표를 샀다. 한눈에 봐도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이었지만 우리는 뻔뻔하게 상영관으로 걸어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속으로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물론 종원이도 그랬으리라).
영화는 어린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길었다. 다만 꼴리오네 가문과 5대 패밀리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의 연기나 니노 로타의 테마곡은 너무 강렬했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알 파치노와 다이안 키튼이 대화를 나눈 직후 이야기가 계속 흘러갈 줄 알았는데 문이 탁 닫히자마자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그렇게 끝을 내는 영화나 드라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어린 소년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종원이가 영화도 멋있고 주제곡도 너무 멋있다고 계속 감탄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았고 급기야 대부 1,2,3가 다 들어있는 DVD '대부 트릴로지 박스 세트'를 사기도 했다. 무려 43분 간 이어지는 돈 콜리오네의 딸 결혼식 장면은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방법론으로서도 기념비적인 인트로가 되었다. DVD 부록엔 코플라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의 에피소드들과 함께 영화 제작 노트가 나오는데 그 준비성이 정말 놀라웠다. 프란시스 코플라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 한 장 한 장마다 커다란 종이를 덧대서 배우들의 동선이나 연출 포인트를 깨알 같이 표시한 두꺼운 소설책을 보물처럼 끼고 다녔던 것이다. DVD에서는 마이클이 첫 살인을 할 때 경찰서장을 쏘고 몇 발자국을 걸은 뒤 권총을 던져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노트했던 것을 보여준다. 그런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그런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 2]는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2년 후에 제작되었는데 전편을 넘어서는 작품성 때문에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몇 년 전 CGV압구정에서 [대부 2]를 재개봉했을 때 혼자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표를 예매하고 퇴근 후 극장으로 갔는데 로비에서 낯이 익은 사람과 마주쳤다. 씨네필을 위한 영화잡지 키노(Kino)를 만들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었다. 그도 혼자였다. 평일 밤 10시에 오직 '대부 2'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로비를 서성이고 있는 평론가의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3시간 20분이 지나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 젊은 마이클이 2차대전에 참전하겠다는 얘기를 꺼내 형 쏘니와 다툰 뒤 혼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장면(여기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이단아였던 말론 브란도가 추가 촬영에 협조를 안 하는 바람에 말론 브랜도의 가짜 목소리만 오는 장면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한밤중이었고 바람이 불었다. 나는 벅찬 가슴을 안고 심야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