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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Dec 13. 2023

마당의 잔디가 알려준 것

너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거리



처음 잔디의 존재를 알게 된 날을 기억한다. 엄마는 매일 찾아오는 성실한 고양이에게 줄 것이 없어 오이를 썰어 내어 주었다고 했다. 나는 고양이가 사람을 간택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마구 호들갑을 떨었는데, 엄만 "난 고양이 싫어. 저러다 가겠지."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잔디는 무척 예민하다. 한쪽 귀 끝이 조금 잘려나간 것으로 보아 중성화 수술을 거친 것이 분명했다. 요즘은 시에서 길고양이의 번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를 강제한다데, 수술의 아픈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길 생활의 힘든 기억이라도 있는 것일까? 잔디는 밥을 먹다가도 사람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 버린다.  


"아니 걘 뭐 그렇게 까탈스럽게 군데? 엄마는 서운하지도 않아?"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집사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며 기쁨을 주는 보통의 반려묘를 떠올리자니, 여태 곁을 내어주지 않는 잔디가 괘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난 지금이 좋아. 더 가까워지면 나도 곤란해." 좋지만 가까워지는 것은 싫다니. 나는 그 말도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둘의 관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초여름에 만난 잔디와 엄마는 어느새 겨울을 함께 맞이했다. 전보다 더 자주 눈을 맞추고, 양질의 끼니를 챙기며, 외출했다 돌아오는 서로를 슬그머니 반긴다. 그런데도 들에게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딱 한 발자국만큼의 '거리'다. 잔디는 엄마에게 여전히 곁을 내어주지 않고, 엄마도 잔디 집안에 들어오는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고 그 공간만큼은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셨는데, 잔디가 처음부터 가까이 다가왔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경계심이 많은 잔디 또한 엄마가 거리를 두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겠지. 이들의 기묘한 동거에 대한 나름 심도 깊은 분석을 해본 결과, 어찌 보면 각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안전거리 덕분에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쉽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가 크게 후회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놓친 것은 어쩌면 안전거리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엄마가 보내준 사진 속 잔디의 놀랍도록 평온한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거리'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젠간 잔디와 엄마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활짝 열고 합가 하길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글.그림: 꽃개미

낮에는 HR 부서 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일기로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수시로 다정했던 순간들을 모으고, 혼자 자주 감동니다.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인스타: @sammyk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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