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Luxury 에 대하여
퇴근하고 지치고 찌든 몸과 마음으로 수요예배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에 사람들이 꽤 많길래 네 명이 마주 보고 앉는 자리에 앉았다. 너무 피곤해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기차 내릴 때쯤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잠깐 찍고 에어팟을 그제야 뺐다.
맞은편에 영국 노부부가 앉아계셨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나한테 뭐 물어봐도 되냐고 말씀하셨다. 순간적으로 동영상에 대한 거이려나 싶었는데, 뜻밖에 가방 어디 거냐고 물어보셨다. 아페쎄라는 프랑스 브랜드라고 말씀드리니까, 할아버지한테 아페쎄 기억하라면서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소녀같이 귀여우셨다. 가방 너무 클래식하고 예쁘다고 이런 아이템은 포에버 아니냐면서 신나서 말씀하셨다. 내가 입은 스타일도 니트랑 코트랑 컬러 매치가 너무 좋다고 그러면서 이런 스타일을 두고 ‘Quiet Luxury'라는 단어를 쓴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다음 역에서 기차를 내려야 해서 “좋은 저녁 보내~” 하고 기분 좋게 인사했다.
피곤했던 순간이 뭔가 개운해지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녀의 사소한 호기심과 친절이 뭔가 나의 하루를 만들어준 기분! 동시에 콰이어트 럭셔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예전에 영국인 친구가 샤넬 가방이 갖고 싶다던 나에게 아페쎄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친구는 진짜 부자들은 브랜드가 적혀있지 않은 그저 질 좋은 아이템을 소장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부러 5분 일찍 교회를 나와 기차를 타러 갔다. 타려고 하는 기차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갑자기 캔슬이 되었다고 한다. JE 이에게 언니 어디냐고 일단 튜브역으로 가고 있다고 근데 언니 괜찮냐고 하는 메시지가 왔다. 암묵적인 우리의 약속이 있는데 내 기분과 감정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다. 기차가 캔슬된 덕분에(?) 동생에게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차를 같이 타고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하 호호 재미있게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 사실은 생각과 감정이 좀 복잡했는데 너랑 이야기하고 행복해졌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왠지 뒷모습이 그래 보였다는 친구의 그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적어도 내 바닥을 보여주진 않을지라도 혼자 있을 때의 나의 생각과 감정은 끝없는 나락으로 종종 떨어지곤 한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자책감이나 죄책감보다, 그렇기에 하나님 께만이라도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문득, Quiet Luxury라는 단어가 옷 스타일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해서 하퍼스 바자에 좋은 글이 있어서 아래에 링크로 공유합니다. 내용에서 가장 와닿았던 점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기사의 문장이 굉장히 와닿았다. 영국에서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정말 쉽게 몸과 마음과 영혼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물론 그것들을 내 힘으로 다 해낼 수 없기에,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https://www.harpersbazaar.com/uk/culture/lifestyle_homes/a43516328/quiet-luxury-life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