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사람 최지인 May 05. 2023

심사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심사역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질문은, '심사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었다.


창업을 할 때 꽤 많은 심사역들을 만나기도 했고, VC 관련 교육 과정을 두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심사역이라는 타이틀에 있는 부풀려진 기대나 오해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역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와 같이 엄청난 메타인지를 필요로 하는 질문이라 많이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서는 답을 찾지 못해 다른 심사역분들 & 임원분들과의 대화, 책과 블로그 글들 등 자료를 참고해 아주 주관적이지만 지표가 될 수 있는 답들을 찾았다.



심사역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업무의 측면]

1. 관점을 판다 : 심사역은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투자 결정을 위한 자료와 관점을 제공한다. 보통의 투자사는 투자심의위원회라는 내부 임원 및 외부 파트너로 구성된 투자 의사 결정 기구가 있다. 심사역은 자기가 생각했을 때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스타트업을 투심위에 가져가서 피칭하게 된다. 이를 위해 창업자와 수 차례 미팅을 갖고, 자료를 받아 분석하며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심사역은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비전을 뿌리까지 이해하고, 이를 본인만의 관점으로 엮어 투심위원들에게 잘 팔아야 한다. 그래서 심사역은 관점을 파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2. 후속 투자 유치를 돕는다 : 후속 투자 유치는 스타트업과 투자사 모두에게 중요한 활동이다. 스타트업은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투자사는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커져 회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심사역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 하우스 자체의 네트워크를 레버리지해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후속 투자 유치를 도와야 한다. 그것이 스타트업의 이익, 투자사의 이익, 또 심사역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사역은 후속 투자 유치를 돕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3. 사업 개발을 돕는다 : 스타트업에게 후속 투자 유치만큼 중요한 일은 사업 개발이다. 기본적으로 심사역들이 창업자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 창업자만큼 한 분야를 깊이 알진 못하지만, 일주일에도 수 십 곳의 스타트업을 접하면서 여러 비즈니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동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네트워크와 지식을 바탕으로, 아는 척만 하기보다는 스타트업의 사업 개발을 위해 힘써야 한다. 비즈니스 간의 공통점을 발견해 win-win 하도록 돕는 것. 심사역의 중요한 역할이다.



[관계의 측면]

1. 창업자와 같은 신념을 갖는 심사역 : 내가 스타트업을 할 때 제일 투자받고 싶었던 심사역이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 것을 믿는 심사역이었던 것 같다. 친절하거나, 날카롭게 나를 찌르거나 혹은 산업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것을 온전히 같이 믿는 심사역. 믿어주는 것이 아닌 진짜 믿는 것. 다만 그게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본인의 관점으로 철저한 검증을 거친 그 이후, 믿음의 영역으로 들어와 준 사람에게 투자를 받고 싶었다. 나도 창업자들에게 그런 심사역이 되고 싶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드는 창업자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2. 좋은 질문을 하는 심사역 : 질문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낸다. 심사역도 마찬가지다. 모든 창업자는 본인 사업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하는 심사역을 존중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 동안 사업을 검토하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기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심사역이 정말 능력 있는 심사역이고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심사역일 것 같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는 심사역이 되어야 한다.


3.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심사역 : 이 항목은 위의 '업무의 측면'과도 맞닿아 있는데, 결국 심사역은 투자를 통해서든 사업 개발을 통해서든 창업자를 '구체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조언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 돈이 되는 곳을 연결해 준다든가, 파트너를 데려다준다든가, 하다 못해 밥이라도 사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창업자는 외롭기 때문이다. 심사역은 구체적으로 도와줌으로써 정말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