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사람 최지인 Dec 17. 2023

[노마드 투자자 서한] 독후감

존경하는 엔젤투자자인 Tony 님의 독서 후기 중 만점을 받은 책은 처음 봤던 것 같다. 점수도 점수지만 책의 주제가 내가 일하는 업계 이야기였고, 13년간 연복리 21%의 수익을 낸 투자조합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바로 책을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의 지평을 두세 단계는 넓혀 준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은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수 천억 원의 조합을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가 수 억 원 이상 출자한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서한 모음집이기 때문에 내용이 다분히 어렵고 전문적이다. 나로서는 이 글을 더디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투자자로서의 지식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이번 글은 '노마드 투자자 서한'의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인용하고 그에 대한 내 해석과 고민들을 엮는 식으로 적는다.



p.88) 투자 실적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기업가치의 절반 정도이기를 희망하는 매수가와 경영진의 자본 배분 역량입니다.


아는사람 생각) 우리 회사가 주로 투자하는 기업은 Seed ~ Series A 단계의 극초기 스타트업이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의 투자금과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노마드에서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매수가'는 우리의 주된 검토 사항은 아니다. 다만 '경영진의 자본 배분 역량‘은 극초기 단계에서도 분명히 중요한 역량일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본 적이 없다. 10억 투자를 받으면 5억은 인건비, 3억은 연구개발비, 2억은 운영비로 쓸게요라고 이야기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고 투자자도 따지고 들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p.95) (PE에 의해 강제로 주식을 매도당한 후) 가장 좋은 방어책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량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10% 이상의 지분율이라면 충분할 것입니다.


아는사람 생각) 나 같은 비상장 초기 단계의 투자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전 동의권, 사외이사 같은 공식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기업과 함께 고민하며 그들이 성장하는데에 크던 작던 기여를 한다. 반면에 상장 이후의 기업 주식 투자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순히 거래자들끼리 시세 차익을 주고받는 기업 외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상장 이후의 기업이라도 자본이 충분히 많다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주주로서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수 이상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리서치를 시작했다.



p.125) 평론가는 PBR이나 PER, 그 현대화 버전인 EV나 EBITDA를 왜 계속 가치의 대용 지표로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데도요.


아는사람 생각) 저자는 DCF(Discounted Cash Flow)가 유일한 가치 평가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투자업계에서 주로 쓰는 PBR이나 PER, EV/EBITDA 등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이 대는 핑계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고백하건대 단 한 번도 투자 기업가치 평가에 DCF를 써본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스타트업 투자 심사역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DCF 역시 수많은 가정이 들어가고 초기 스타트업에는 DCF를 할만한 근거도 없기에 하지 않는다라는 말에도 일부 동의하지만, 실제로 해보기나 하고 하는 말일까? 근거가 충분히 쌓인 Series B 이후의 투자에도 왜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 DCF, 공부해야겠다.



p.161) 빌 밀러는 투자에 대략 세 가지 경쟁우위가 있다고 했는데요. 아무도 모르는 의미 있는 정보를 알고 있는 정보적 경쟁우위와 공개정보를 수확해 우월한 결론에 도달하는 분석적 경쟁우위, 투자자 행동과 관련한 심리적 경쟁우위입니다. 보통 분석적 경쟁우위와 심리적 경쟁우위가 합쳐졌을 때 지속가능한 경쟁우위가 됩니다.


아는사람 생각) 비상장 시장에서 투자자는 보통 '정보적 경쟁우위'를 갖는다. 그게 유일한 경쟁우위처럼 여겨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어디가 이번에 투자라운드를 연다더라, 어디가 대기업과 계약을 맺는다더라, 어디가 상장을 준비한다더라와 같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말이다. 그래서 이 업계에서는 네트워크와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비상장 시장에서 분석적 경쟁우위, 심리적 경쟁우위가 너무 평가절하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그게 정말 지속가능한 '투자 실력'인데 말이다.



p.279) 노마드의 조건부 성과보수 적립금 작동 방식

아는사람 생각) 노마드는 성과보수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매년 추가 수익분에 대해 30% 이상을 수취하는 다른 회사에 비해 20%라는 낮은 성과보수율을 책정한다. 더 놀라운 점은 성과보수로 받은 돈을 펀드매니저에게 바로 정산하는 게 아니고 80%는 적립해 뒀다가 성과가 나지 않는 해에 출자자들에게 환급해 준다. 관리보수 역시 펀드 총액에 연동되는 것이 아닌 펀드 매니징 법인 유지에 필요한 최소 금액을 설정하고 그 비율도 펀드 총액의 1% 미만으로 잡는다.







p.284) 자신을 속이지 않는 방법의 하나는 자기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는사람 생각)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지적으로 가장 우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투자업계에 들어와서 지적으로, 경험적으로 정말 우월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지적으로 우월하고 싶어서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있는 곳은 일부러 피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자극을 얻어 성장하기 위해 나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p.286) "당신은 어떻게 창의적인 사고를 합니까?" (중략) "1) 무언가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충분히 데이터를 모은 후 모순을 알아채고는 이제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2) 후퇴해서 뜸을 들이며 심사숙고하다 보면 잠재의식을 사용하는 인큐베이션 기간에 돌입합니다. 3)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마치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계시처럼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4) 가서 새 해결책을 검증합니다."


아는사람 생각)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후퇴해서 뜸을 들이며 심사숙고하는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웬만하면 야근을 하지 않고, 주말에 건강한 휴식 시간을 확보하는 이유다. 데이터를 확보하는 시간과 그것을 생각하는 시간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생각의 시간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



p.297) 펀드 매니저가 출자금 반환 선택권을 갖는 동시에 상환주의 이자 개념에 해당하는 투자수익을 돌려줌으로써 투자의 기회비용까지 책임지는 것


아는사람 생각) 노마드 투자조합의 펀드매니저인 닉과 콰이스는 펀드의 크기를 최대한 키워서 관리보수와 성과보수를 많이 받는 것보다 그들이 운용하기에 딱 맞는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기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펀드 출자금액의 반환에 대한 논의도 필요했는데, 이들의 답은 출자금을 상환주 대금으로 간주하고 상환 행사권을 펀드 매니저가 갖는 것이었다. 즉, 출자금 반환이 필요할 때는 펀드매니저가 상환권을 행사하여 출자자에게 출자금을 돌려주되, 그에 대한 기회비용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이자를 얹어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출자금을 반환할 생각도 안 하는 업계에서, 반환 자체에서 더 나아가 합리적인 반환의 방식까지 이렇게 멋지게 고안해 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p.360) 투자자들은 강연이나 발표를 들을 시간에 이메일 답장을 하느라 바쁘고, 휴가 때는 책을 읽거나 휴식하는 대신 온종일 핸드폰만 붙들고 있습니다. 반드시 오늘 산출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는사람 생각) 투자자들은 항상 바빠 보인다. 이동하면서도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고, 미팅에서도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받는다. 나도 그럴 때가 있지만 진짜 그래야만 할까? 그렇게 바쁘면 도대체 뇌의 어떤 부분으로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걸까? 투자자들은 생각하고, 집중하고, 휴식하는 시간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p.467) 투자조합 운용 관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므로 운용보수는 투자조합의 비용을 충당하는 정도여야지, 이익 창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는사람 생각) 한국의 투자사들은 운용 펀드의 규모를 키우는 경쟁을 하고 있다. 펀드 규모가 클수록 좋은 투자회사라고 평가한다. 큰 펀드를 통해 안정적인 수입원인 운용보수(관리보수)를 많이 확보하여 회사의 지속적 생존을 추구한다. 그런데 말이다. 펀드 규모가 클수록 좋은 투자회사라고 평가하고, 운용보수로 회사의 수입을 늘린다면 그것은 '투자'회사가 아니라 투자'회사'인 것 같다. 투자를 잘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보다는 회사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만 있는 것 같다.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전설적인 투자조합인 '노마드 투자조합'의 내부를, 펀드매니저인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의 생각을, 또 투자업계에서 일하는 동안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주제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2023년을 시작하며 '일'을 키워드로 잡았었는데 그 '일'에 대해 한 단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을 만난 것 같아 즐겁다. 닉과 콰이스가 말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마음을 다잡고 지평선을 바라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