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노마트 투자자 서한 독후감을 쓴 이후로 오랜만에 독후감을 써보려 합니다. 오늘 독후감을 쓸 책은 인비저닝 파트너스 제현주 대표님의 '일하는 마음'입니다.
제현주 대표님은 작년 아산나눔재단 데모데이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대표님은 심사위원이셨는데, 질문하시는 것을 듣고 저분 뭔가 있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내리 2권을 주문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VC로서, 그리고 일하는 개인으로서 배울만한 것들이 정말 많아 즐겁게 읽고 독후감을 남깁니다.
p.47) "대개 배움의 열쇠는 애쓰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명료하게 생각하는 데 있다. 즉, 당신이 늘 하던 방식대로 행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 배움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VC라는 직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아이디어들을 접하는 등 외부의 자극에 정말 많이 노출됩니다. 이럴 때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쁨에 치여 투자 의사결정에 제대로 된 시간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투자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p.49) 핵심은 '나'의 '성장'이 아니라 내 눈앞의 과업(무엇)과 그것을 해내는 방법(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발 한 발을 제대로 올바르게 내디딜 수 있어야만 부상 없이 잘 달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제가 마음에 담아두고 종종 꺼내보는 문장 중 하나는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라는 문장입니다. 성장과 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저 문장을 꺼내보며 그래 이렇게 시간을 쌓아나가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저자도 비슷한 생각의 회로로 달리고 계신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p.121) 하루키의 책을 대체로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글 곳곳에서 풍겨 나는 달리는 사람, 즉 몸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이다.
제가 좋아하는 창업가분들의 공통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으로서 저의 답은 '운동선수 같은 사람'입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창업이란 머리로 한다기보다는 몸으로 부딪혀서 근육에 새겨진 감각으로 해나가는 것이며 결과에 대해서는 정확한 숫자로 평가받는, 프로 운동선수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이 있는 창업가이겠네요. 자기 사업에 대한 단단한 코어를 가지고 있는 창업가분들을 많이 만나 뵙고 싶습니다.
p.140) "넌 사는 게 괜찮아?"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흐, 픽, 흥, 허, 풉을 뒤섞은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고는 5초쯤 후에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아"라는 대답인지 대답이 아닌지 모를 말을 하더니 "사니까 사는 거지, 가 아니게 만드는 건 그런 일이야"하고 덧붙인다.
완전히 공감합니다. 저는 요즘 평일 저녁 시간은 물론이고 거의 매 주말마다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괜찮은 것은 'VC 투자'라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안성재 셰프가 유튜브에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되는 게 꿈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저도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앞으로는 종종 말하고 다녀보려고요.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되는 게 꿈이다라고. 최고가 무엇인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
p.174) '나 스스로 이 답이 맞는다고 믿는가'와 '디렉터가 어떻게 생각할까' 중에 어떤 질문을 먼저 고민할까 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나는 아직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있나 싶기도 했고요.
요즘 많이 하는 고민입니다. 제가 발굴한 투자건에 대하여 고민할 때 담당 파트너님 혹은 투자팀 다른 구성원들의 생각이 어떨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투자라는 것은 답이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 즉 내 스스로 정말 이 투자가 맞다고 믿는가가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에 앞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해 보는 것이 먼저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진짜 맞다고 믿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해 봐야겠습니다.
p.194) 나는 그냥 무던한 사람, 좋은 친구가 아니라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심사역 동료들과 이야기하던 중 한 분이 '나는 투자한 회사 대표님이 가장 먼저 전화하는 친구 같은 심사역이 되고 싶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당시 그래 좋은 말이네, 맞는 말이야 하면서도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왜 그랬을까 이유를 좀 더 고민해 보니, 저는 언제든 연락하는 친구 같은 파트너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저 사람에게 연락하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돼, 저 사람은 우리 회사가 성장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파트너야.라는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p.204)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짐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하시는구나 싶었다. 염치를 차리며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 테다. 그분의 3년 계획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p.221) 나에게 '책임'은 나를 앞으로 나가게 밀어붙여주는, 너무 달콤하고도 강력한 기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일으킨 동기가 사그라질 때, 나를 끝까지 길 위에서 버티게 해 줄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힘 중 가장 좋은 것이 내게는 책임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깨우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저에게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저는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사는 게 목표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에게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고, 떳떳하다는 것은 책임지며 산다는 뜻입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일들에 책임을 지며 산다는 것이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238) 서로의 시도와 성취들에 (칭찬이 아니라) 감탄하는 것, 그 감탄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서로를 향한 최고의 임파워먼트라는 점이다.
투자자로서의 일에 몰두하다 보면 감탄보다는 칭찬을, 칭찬보다는 평가를 하게 됩니다. 사실 세상엔 평가보다는 감탄할 만한 일이 더 많은 데도요. 감탄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에 더 노력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