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나눕니다!
이제 보니 알게 모르게 홀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브런치에 쓴 글이 벌써 100번째가 되었다.(지금 이 글!) 무엇 하나 꾸준히 못하는 성격인데 글이 어느덧 백 개가 쌓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양과 질이 무릇 비례하지는 않지만 0과 1의 차이로 보자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기에 시작으로부터 100번째는 꽤 크게 느껴진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라이프 매거진에서 필름을 관리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영화에서 그는 별다를 일 없이 매일매일 출근하는 9to6의 보통의 인간처럼 그려진다. 우리 주변에서 늘 마주치는, 그리고 우리 자신 같은. 회사를 폐간하려는 새로 온 CEO는 그를 무시하고 무색무취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럴 때마다 월터는 점점 더 상상 속으로 도망간다. 그가 일시적으로 도망칠수록 사람들은 현실의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구조조정의 불안함 속에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라이프 매거진 커버 마지막을 장식할 숀 오코넬의 마지막 필름 한 조각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 헤매던 마지막 필름 한 조각은 그가 늘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지갑에서 발견된다. 자신과 대척점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던 숀은 숀의 일과 월터의 일이 다르지 않다며 그를 인정한다.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쌓아하는 일.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월터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커버가 된다.
월터는 결국 밖으로 나와 삶의 정수가 일상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사실 스스로 그걸 깨닫는 건 쉽지 않다. 그러기에 나도 월터처럼 햇볕 아래 앉아 온갖 상상과 가정으로 도피하곤 한다. 그럼에도 숀 오코넬처럼 세상에 누군가 한 명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에, 월터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실행'할 뿐. 나 역시 브런치를 꾸준히 쓰기까지 숀 같은 이들이 있었던 덕에 가능했다. 어쩌다 보니 브런치 글 조횟수도 80만을 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책을 내고,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들이 발생했다. 연재라는 것도 해보고 잡지에 글도 기고해 보고, 독자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무게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이 온전히 내 생각을 담아낸 것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귀중한 시간을 무용하게 하진 않았는지 더욱 신중해진다.
1에서 100까지 도달하기까지 처음엔 글의 소재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 여행이나 도전, 퇴사처럼 무언가 특별한 일상을 누려야 글의 소재가 나올 것 같았기에, 소소한 개와 고양이의 일상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개와 고양이의 일상이기에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털복숭이 녀석들과 이런 일들을 겪지만 그걸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글이 나올 때마다 공감해 주시는 분들 덕에 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물론 그중에는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저장 창고에 갇혀 있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주춧돌처럼 녀석들은 시리즈 글을 잘 받쳐주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1년 평균 독서가 3.9권이라는 발표를 봤다. 내가 적어도 한 달에 4권은 읽는 듯하니 누군가는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작가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에서 자기 책을 사면 순위가 400위가 올라간다는 밈meme이 떠돌기도 했다. 물론 책도 매체의 일부 중 하나이므로, 매체가 시대에 따라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온라인에 재밌는 컨텐츠들이 무한히 넘쳐나는 마당에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시대에 책은 다른 매체에 비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작년에 풀 근무를 하면서 여유 없는 상황에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도 ‘차이와 반복’을 읽다가 살며시 덮고 들뢰즈를 유튜브로 습득했으니…) 효율성에서 매력도도 떨어지는 마당에, 요즘 책 한 권이 14000원이 넘는다. 정갈한 보통의 밥 한 끼가 12000원 정도 한다. 비교적 책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 나조차도 예전 같았으면 구매했을 책을 두세 번의 고민 끝에 서가에 다시 꽂아놓는 일이 왕왕 새긴다. 감사하게도 집 근처에 도서관이 두 군데가 있어 이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런 와중에 도서관 예산이 삭감되었다고 하니 꽤 아득해진다. 화면을 넘어 손으로 만져지는 종이책을 구매해서 봐준 분들께 그저 더욱 감사하다. (진심으로)
100번째에 이렇게 의미를 두니 101번째는 어떤 글로 시작해야할 지 설레인다.
- 엘르에 최근 기고했던 글(선업튀 인터뷰와 같은 달에 실렸다!) https://www.elle.co.kr/article/1862831
- 출판사에서 받은 ‘유기견, 유기묘’ 책 두 권 정도 나눔 하려고 합니다. 혹시 원하시는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보내드릴게요 :)
- 혹시 함께 꾸준히 글쓰기를 한다면 같이 하고 싶은 분들이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