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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Feb 10. 2023

시바와 녹내장, 시바!

유전병

 푸코의 안과 병원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푸코 병원까지는 왕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늘따라 외곽순환도로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았다. 렉카차와 보험사 차량, 경찰차가 범벅인 채 한편에서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운전 중 마주치는 사고장면은 평소보다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운전을 왕왕하게 된 것도 녀석의 병원 진찰에서 시작됐다. 가는 길이 마치 여행 같지 않냐는 토록의 말과 달리 나에게 병원 가는 길의 운전은 푸코 눈의 검진결과에 대한 걱정을 가중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부산이 아니라 분당인 게 얼마나 다행이냐 싶으며 바짝 긴장한 채 외곽순환도로를 달린다. 진찰하는 동안 다른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막상 분당 사람보다 외지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그래서인지 동물병원에 할당된 주차장은 늘 만차이고, 덕분에 나는 주차실력이 조금 늘 수밖에 없었다.


 푸코의 녹내장이 발발 후 시간이 꽤 흐른 만큼 김 선생님과의 인연도 꽤 깊어졌다. 원인도, 치료방법도 전무한 녹내장이라는 질병과 푸코의 상태에 그녀는 늘 가슴 아파해주셨고, 조곤조곤 녀석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수의사라는 직업은 항상 아픈 동물들과 그들의 보호자를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에 보람을 느끼는 것만큼 부담감과 책임감도 지대하리라 추측해 본다. 다행히 녀석의 오른쪽 눈은 응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시술을 마친 왼쪽 눈과 달리 오른쪽 눈은 양상이 달랐다. 오른쪽 눈은 왼쪽 눈 때처럼 부풀어 오른 안구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탁도가 높아지고, 시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 외에는. 그냥 녹내장의 진행순서답게 시력이 감퇴하고, 이 것이 망막 쪽에 영향을 줘서 세포들이 변질되고 죽어간다는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의 식욕이 왕성하고 움직임 실험에서 여전히 활발하다는 것이었다.


산책 후 피곤해한다.

‘혹시 죽은 세포가 다른 기관에도 영향을 주나요?’


  우리가 태어나면 당연히 죽음을 향해가는 것처럼, 녀석의 녹내장도 그러했다. 이미 발발했으니 계속 악화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의 속도와 고통을 어떻게 지연시킬 것인가만이 반려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세포가 나쁘게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은 또 다른 불안감을 낳았다. 전이의 가능성. 불안의 눈빛을 읽으신 듯 김 선생님은 다행히 눈은 신체에서 꽤 독립적 기관이라며 다른 기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적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다만 눈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채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병원에서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것인가.) 그 외에 계속 안약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처방을 듣고 세월이 쌓아준 친밀도를 기저 삼아 스몰토크를 나눴다.


  사실 녀석의 녹내장 증상이 시작됐을 때인 3~4년 전 전에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푸코 병이 녹내장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거의 세 번째 간 병원에서였다.) 유명한 병원도, 약도, 증상 하나 찾기 어려웠던 경험을 잊을 까봐 이 것을 블로그에 남겼는데, 최근 ‘시바 녹내장’이라는 키워드로 찾아오거나 문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만큼 시바와 녹내장을 잘 알고 계신 김 선생님과 나는 걱정을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시바가 인기 있기 시작한 지 채 10년이 안되었고, 이 병은 원인도 증상도 알 수 없고 그저 나이가 점차 들면 스멀스멀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치료이기에 사실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었다. 의료보험적용이 안 되는 온갖 안약은 엄지손가락만하고, 하루 12시간 주기 혹은 8시간 주기로 정확한 시간에 투약해야하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으로선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는 그 시기에 일을 줄여서 시간에 맞춰 투약할 수 있었지만 일이 바쁜 날에는 펫시터를 불러 투약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 인식이 높아진 시기에 시바견의 인기가 높아졌지만, 김 선생님과 나는 이 병이 보호자에게 부담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유기되는 시바가 없기를 바랐다.

곤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그럼에도 유기동물보호소 공고를 보면 시바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L이 시바스러운 개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을 때 후보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다.  각각의 개마다 지닌 유전병이 있다. 어떤 개들은 디스크, 슬개골탈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녹내장은 시바의 유전병 중 하나이다. 태어날 때부터 녹내장의 발발 가능성을 안고 태어나는 녀석들이다. 그저 인형같이 귀엽다고, 인기가 있다고 섣불리 생명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지금 시바스러운 녀석들과 식구인 분들이라면 끝까지 녀석들을 책임져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김 선생님과 무거운 토크를 끝냈다.

부산 병원 갔던 시절


(혹시 녹내장에 대해 궁금하신 것 있으심 언제든 물어보세요)

강형욱 유튜브 시바편 댓글 중 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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