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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주 Oct 06. 2022

[간헐적채식] 내가 채식루틴을 지키는 이유

건강하려면 건강한 루틴이 필요한 법


아무리 바빠도 삼시 세 끼를 챙겨먹어야 하는 이유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전국을 다니며 채식 강의를 할 기회가 많았다. 요즘처럼 채식 붐이 크게 일지 않았던 때였고, 채식에 대해 가르칠 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방 강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 일찍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는 일이 많아 정작 제대로 끼니를 챙기기 어려웠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까지 말 그대로 ‘채식을 책으로 공부한’ 나는 생 현미에 견과류를 조금 곁들여 먹곤 했다. 부담 없이 한 끼를 때울 수 있었는데, 맛도 담담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먹는 재미는 그다지 없었다. 채식 강의를 한다면서 굶거나 아무거나 사 먹는 대신 겨우 채식을 할 수 있는 궁여지책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착잡한 기분의 나를 마주했다. ‘도대체 이렇게 살아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잘 먹으라고, 잘 먹어야 한다고 강의하고 돌아다니면서 정작 나 자신은 이렇게 먹고살아도 되는 건가, 회의감이 밀려왔다. 


비로소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 못지않게, 스스로 잘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의명분에 따른 일의 성취감이 아무리 커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만족감이 사라지거나 둘의 균형이 깨진다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로는 외부 강의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을 대폭 줄이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를 돌보는 일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채식루틴 - 점심식사  ( 복숭아해초샐러드, 순두부, 현미구기자은행밥, 가지구이)


채식루틴 - 한약국에서 점심식사  ( 복숭아해초샐러드, 순두부, 현미구기자은행밥, 가지구이)


우선 내가 강의로 떠들던 것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활동의 방향성을 바꾸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이벤트 대신, 소소하게 적은 인원이 모여 채식 요리를 즐기는 ‘고기 없는 즐거운 파티’처럼 ‘먹고 사는 재미(Fun)’를 주제로 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채식 요리를 직접 만들어 즐기기 시작했다.



채식루틴 - 한살림 차요테, 유기농키위, 애플민트, 건딸기로 토핑한 카나페


먹는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니던가. 먹거리를 바꾸는 것은 일단 재미있고 맛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야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 이전에 나 자신부터 먹는 재미가 쏠쏠한 채식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운 원칙이 삼시 세끼의 루틴을 만들고 정성스럽게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삼시 세끼의 식사 시간마다 나를 위해 헌신하듯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고 맛있게 즐기면서 식사를 하자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요란하고 거창한 음식이 아니더라도, 정성을 다해 요리하여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나에게 드리는 예배와 같았다. 아침에는 몸을 배려한 차와 음식으로 가볍게 식사하고, 출근 후에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나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 시작했다.


채식루틴 - 점심식사 ( 현미구기자완두만가닥버섯밥, 콩나물, 깻잎순유부무침, 비건갓김치, 방울토마토 / 시래기두부된장국


한약국에서 맞이하는 점심 식사 시간은 아무리 바빠도 축제처럼 아름다운 음식을 차려 나에게 대접하기 위해 노력했다. 간단하지만 마음을 담은 요리를 내 몸에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약국을 찾는 분들과의 약속은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채식루틴 - 점심식사 ( 현미은행버섯밥, 단호박찜, 세발나물감귤샐러드, 무말랭이무침, 어린잎샐러드, 시금치된장국)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미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나를 배려하며 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나의 시간을 짜깁기하듯 상담을 하고 약을 짓고 강의를 해온 것이다. 


나를 배려하고부터는 내 리듬에 맞게 예약 시간을 조절하게 되고, 강의 시간도 그에 맞춰 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의 호흡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온몸의 근육과 신경까지도 잔뜩 긴장하고 있을 만큼 허덕이며 살았던 것이다. 



채식루틴 - 주말의 점심 ( 오렌지렌틸콩, 구기자, 오이, 방울토마토, 어린잎, 양배추, 적양파, 현미밥, 된장아몬드소스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 사이, 점심 식사와 오후 티 타임 사이, 그리고 티 타임과 저녁 식사 사이 사이로 내 모든 일정들을 밀어 넣었다. 나의 메인 무대는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시간이고, 나머지는 그냥 덤이라 여기기로 생각했다. 


채식루틴 - 저녁식사 ( 흑미은행밥, 시금치나물, 양배추단호박찜, 은행흑임자무침(구기자토핑), 적양파장아찌, 비건김치, 가지구이 )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상의 루틴을 몇 년간 지속하다 보니 마음과 호흡이 저절로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공적인 활동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오해도 많이 받고, 억울한 누명도 쓰게 되고, 말도 안 되는 악성 댓글로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잦았다. 체력도 많이 소모되고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경제적인 걱정거리도 늘 나를 부담스럽게 짓누르는 골칫거리였다. 때로는 그런 걱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곤 했다.


채식루틴 - 간단한 아침식사 (쌀요거트, 블루베리, 석류, 호박씨, 계피가루 토핑)


그런데 먹는 일에 목숨을 걸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본전은 찾았다는 감정이랄까. 세상살이가 뭐, 별 게 있나, 이렇게 평안하고 배부르고 즐거운데... 이런 마음이 들자 내게 다가오는 모든 걱정과 시름거리들이 지금 당장 먹어야 할 한 끼와 그다음 끼니 사이에 일어나는 그저 그런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채식루틴 - 간단한 한 끼 (연근양배추잡채)


어떤 때는 방송에 나가 요란하게 알려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다음 끼니를 먹을 때가 되면 여지없이 차분해졌다. 


내 활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 되는 억측과 비난, 때로는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몹시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다음 끼니 때가 되어 정성스레 밥을 지어 마주하면 또 이렇게 하루가 별일 없이 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저절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끼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채식루틴 - 간단한 한 끼 ( 비건바질페스토 가지구이  - 방울 토마토, 래디쉬, 망고,  고수 토핑 )


호흡은 마음과 감정에 따라 요동치는 법인데, 이런 상태에 이르니 웬만한 일에는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방송을 나가든, 규모가 대형 강의를 하든,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도 흐트러짐 없이 조근 조근 내 스타일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을 마치고 그다음 끼니를 맛있게 즐길 수 있으면 되니, 크게 애를 태울 일도 몸이 달아 안절부절할 일도 없지 않겠나. 




채식루틴 - 삼색김밥 ( 김치, 단호박, 아보카도, 현미밥), 어린잎방토샐러드


- 이현주 저. [30일간의 간헐적채식(쏭북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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