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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주 Nov 04. 2022

이제는 간헐적 채식의 시대


(1) 늘어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건강과 환경을 위한 저탄소 식단, 채식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채식을 시작하려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다. 건강하고 맛있는 채식 식단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채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바꾸려면 어떤 루틴이 필요한지 [채식연습] [30일간의 간헐적 채식]의 저자 이현주 박사(한방채식 기린한약국 원장, 한국고기없는월요일 대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로부터 듣는 채식 이야기를 매주 연재한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이라는 단어가 더는 낯설지 않다. 오히려 조금은 트렌디하고 세련된 느낌까지 든다. 그만큼 비건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일까?그보다는 ‘주로 채식을 하지만 가끔 고기나 생선도 먹는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건 제품을 소비하고, 비건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은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채식에 대해 한 걸음을 떼고자 하는 비건 지향의 간헐적 채식인들이다. 호기심은 있으나, 완전히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채식을 하기엔 아직은 조금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2018년 나는 베를린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했다. 전 세계의 채식, 동물,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육류소비 감축을 위한 토론과 발표, 네트워킹을 하는 자리였다. 프로베지인터내셔널(ProVeg International)이란 단체가 주최한 이 포럼의 어젠다는 2040년까지 육류소비를 50% 감축하자는 의미의 ‘50by40’였다. 이제 채식과 육식의 이분법 논쟁을 하며 누가 더 윤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완벽한가를 논하기보다, 지구에서 다 같이 지속가능하게 살아남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 부담 없이 시작해볼 수 있는 친절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최근 유행하는 먹거리 운동의 테마는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이다. 완벽하게 비건은 어렵더라도, 가능한 만큼 고기를 줄여먹자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식단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건지향 락토’ ‘비건지향 페스코’ ‘비건지향 플렉시테리언’ 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포럼이 열리기 전 비건들을 위한 워크샵이 열렸는데,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는가]를 저술한 멜라니 조이(Melanie Joy) 박사가 진행하는 세션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던져졌다.


“ 만약 친구가 내가 비건인 줄 모르고, 가죽벨트를 선물했다. 당신이라면 이 선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


팀을 나누어 토론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처음 비건이 되었을 즈음, 선물로 받았던 가죽가방이 떠올랐다. 유명브랜드의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이었다. 나는 옷장 한구석에 넣어두고 한번도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았다. 내 양심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늘 가방을 볼 때마다 선물을 해준 사람이 떠올라 미안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몇 년간 소장한 것으로 선물한 사람의 정성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었다. 토론의 자리에선 정답이란 없었다. 어떤 친구는 일단 받은 것이니 기분좋게 들겠노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준 사람에게 돌려주면, 자신이 비건이라 이 벨트는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고 했다. 나는 그냥 나의 불편했던 과거의 경험을 나누었다.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우리에겐 수많은 질문과 그보다 더 다양한 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각자가 다른 해결방식을 선택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워크샵 내용 중에서 인상깊은 표현 하나가 다시 내 귀를 두드렸다. 사람마다 먹는 욕구에 대해 참을 수 있는 저항력(Tolerance)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식욕을 통제하는 힘이 강해서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비건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먹고 싶은 욕구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통제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번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비단 고기 뿐만 아니라 알코올이나 카페인, 인스턴트 식품이나 페스트푸드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저항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마다 저항력의 차이가 날까? 그것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문화와 관계, 습관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개성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매우 방임형 교육을 받아온 사람과 스파르타식으로 훈육을 받아온 사람, 교육방식은 권위적이지 않으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 짜여진 규칙에 적응하도록 교육받아온 사람은 저항력의 차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모두가 출발부터 비건으로 줄을 맞춰 시작하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육류소비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리기 위한 전략으로, 단 한 가지 메뉴만 고기 대신 채소로 바꿔보자는 캠페인이 성공을 거둔 예가 있다. 급식에 자주 등장하는 햄버거의 패티를 소고기 대신 버섯으로 바꾸자 온실가스 배출량이 11배가 줄어든 것이다. 이와 같이 융통성을 가지고 육류소비를 줄여나간다면, 누구나 지구를 위한 식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다. 의식적으로 먹고 사려 깊게 살아가는 일, 나와 지구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 다른 생명들과 인간이 연결된 하나의 생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아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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