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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May 16. 2021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저녁 7시 전화가 왔다. 회사 부장님이었다.

 

“진창아~ 다음 주 화요일 뭐하냐? 안 바쁘면 전라도 넘어와서 일 좀 도와주라”


“네 일정 빼보겠습니다~”


“아니 뭐 바쁘면 안 와도 되는데, 그냥 간만에 니 얼굴이나 보고 밥 먹자는 거지 겸사겸사, 진짜 맛있는 거 사줄 게 여기 콩국수에, 불고기에 골라만 봐라”


“부장님 별로 안 중요한 거면 안 가면 안 될까요 여기서 왕복 6시간인데 갔다 오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기도 하고……” 


급한 일이라 어떻게든 가야 하는 줄 알았지만, 듣고 보니 별일이 아닌 듯해서 갑자기 꺼려졌다. 급하지도 않은 일에 왕복 6시간을 운전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나에게, 아주 비효율적이고 꺼려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10분이 넘는 공방 끝에 난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싶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다는 부장님의 아름다운 요구에 마땅한 변명거리를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는 것도 있지만 당연히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2시간 분량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왕복 6시간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최근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고, 도움받은 부분도 꾀나 있었기에, 속사포로 설득하는 부장님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라도로 가야 하니, 혹시나 잠에 못 들면 안 된다는 핑계를 들어 술을 마신 것이었다. 4년 전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벽에 퇴근해 잠을 잘 못 이루는 날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잠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겨 버렸다. 그렇게 난 약간의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명상하듯 집중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고 그 마저도 잘 되지 않을 때는, 화장실을 오가며 빠르게 다가오는 아침을 겁내야 했다. 얼른 잠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잡생각을 불러왔고, 결국 눈만 감은 채 어제와 구분할 수 없는 아침을 맞곤 했다.


원래 나는 술을 잘 못 마셨다. 조금만 마셔도 온몸이 빨개지며 어지러워졌기에 술이 나에게 안 좋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술을 마시고 쓰러지듯 몇 번 잠을 자게 된 이후로는 술에 의존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몸은 안 좋아졌지만, 정작 끊어야 하는 술은 끊지 못한 채, 간에 좋은 영양제를 잔뜩 구비해서 먹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아침에 찌뿌둥하게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식탁 위에 온갖 영양제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에는 비타민 한 종류였지만, 간에 좋은 영양제 또 무슨 영양제 등 하나씩 사모으다 보니 한 움큼이나 되어버렸다. 갑자기 멍해지면서 영양제들을 바라봤다. ‘난 잘 살기 위해 이 영양제들을 먹는 것인가?’, ‘오래 살기 위해?’, ‘무엇을 위해?’ 갑자기 건강을 챙기는 내 모습이 어색해졌다. 왜냐하면 불과 몇 년 전만(불면증을 얻은 시점) 해도 나는 사고사, 병사와 같은 죽음을 달가워? 했었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르며 중얼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이런 생각 참 자주 했었는데......."


‘사고가 나거나, 죽을병에 걸려 죽게 되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제 그만 죽었으면 싶었다. 20대의 나는 사는 것이 늘 버거웠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현실에서 너무 먼 꿈을 꾸며 살았기에......., 힘들 때면 이상을 바라보며,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 잘될 거야"였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걸었다. 때론, 이렇게 고생만 하다 끝나지 않으면 어떡하냐며 겁을 먹었다가도, 내가 나를 밀면서 꾸역꾸역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자살은 왜 생각하지 않았는가? 자살은 비겁하다 생각했다. 불교인지 어디서 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자살을 하면 왠지 다시 또 태어나서 이 힘든 시기를 겪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번 생을 내가 기권하지 않되, 이 정도 배우고 힘들었으니 신이나, 운명 같은 차원에서 내 삶을 끝내 주기를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난 한숨을 내쉬며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농담처럼(진담이었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혹시 죽으면 ‘티벳 사자의 서’(사망 직후 고인 옆에서 읽어주면 해탈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책)를 꼭 읽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랬던 내가,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새롭게 느껴지는 세상에, 상당한 어색함을 느끼며 전라도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전남 순천. 그중에서도 산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이미 지고 있는 벚꽃이었지만 정말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벚꽃을 좀 더 느껴보고자 창문을 모두 내린 채 봄바람을 맞는 등 그날따라 평소에 잘 안 하던 행동들도 서슴지 않았다. 햇빛도 너무 아름다웠기에 심지어 ‘오늘 여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은 정말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났고, 부장님과 함께 맛있는 전라도 한정식을 먹으며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돌아가려 차를 타고 들어선 도로 위로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도로 양쪽에 나 있는 벚꽃나무들은 도로 위 하늘에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고 난 세상의 축복을 받는 듯 황홀한 기분으로 한참 동안을 달렸다.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었기에 천천히 운전하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꼭 내생을 축복해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에필로그


다시 태어나고 싶으면 어쩌지?







전라도로 가기 전날 술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었다. 


따뜻하고 뿌연 배경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죽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떠오른 채 그와 함께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었다. 이 세상과 멀어지며 ‘죽음’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비로소 '죽음'이 내게 왔음을 알게 된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다’였다. 갑자기 간절히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 살고 싶어 졌다. 때론 전쟁터 같았고, 때론 고통뿐인 세상이라며 죽고 싶다고도 말했던 그 세상을……, 그 후회 많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말했다. “살려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 다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누군가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러면…… 다시 태어날 수는 없나요?”


이번 생의 목표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며 떠들어대 왔고, 그 목표는 아직 굳건히 가지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런 내게서 절대 나오면 안 될 말들이 나왔다. 


그렇게 난 꿈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난 살아있었고, 이곳은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윤회는 엄청난 수련과 역경을 통해서 깨우쳐야만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려나…….’


이런 작은 의문을 품은 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고, 그날의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후회 많은 이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http://m.sisa21.kr/news/articleView.html?idxno=3879

http://www.wikileaks-kr.org/news/articleView.html?idxno=38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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