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방이 없어서 일기를 쓴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자기만의 방>이라는 소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읽어본 적은 없으나, 페미니즘 대표 서적으로 알고 있다.
책을 펴본 적이 없으므로,
책 제목만으로 페미니즘과 연관 지어서 얘기해보려 한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 일이
왜 페미니스트,적인가,
왜 그리 중요한 것일까?
자기만의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은,
가장 편안하고, 풀어지고, 어질러질 수 있는 공간.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나의, 나만의 공간.
그리고 그 방이 없다는 것은,
온 오주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몇 평조차 없다는 것.
하지만 나의 엄마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
그녀는 아빠와 같이 방을 쓴다.
옷장도, 침대도, 이불도,
취침시간도, 온도도, 코 고는 소리도,
두 명이 다 나눠야만 하는 '둘만의 방' 속의 삶은 어떠할까.
그래서인지
엄마는 그녀의 일기장을 언제나
거실 책상 첫 번째 서랍에 둔다.
차마 둘만의 방에 두기에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사적인 일기장.
하지만 엄마의 방이 없어서,
아무나 엿볼 수 있는
공간에 두어야 하는 엄마의 일기장.
그리고 나는 엄마의 일기를 훔쳐본다.
어린 시절 굴뚝을 타고 내려온
산타할아버지와 같은 필체로
써 내려간 엄마의 일기.
여러 분노, 서글픔, 답답함 등이 읽힌다.
그리고 엄마의 그런 상황들을 알면서도,
바쁘다며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나는
괜스런 찝찝함을 느낀다.
엄마는 그 일기를 누가 봐주기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 일기장이, 엄마만의 방인 것일까?
어느 쪽이든,
엄마의 방에 몰래 들어간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P.S.
자기만의 방이 없어져야만 '진짜' 결혼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둘만의 방에 자기만의 서랍을 갖고 싶다.
그리고 내가 나라는 것을
후각으로, 촉각으로, 청각으로,
상기시켜 줄 물건들을
그 서랍 안에 꼭꼭 채워,
내가 나임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
나는 두 사람의 일부이기 이전에,
나는 나였고, 나는 나야.
잊지 마.
서랍에 자물쇠가 걸리지 않게끔,
언제나 서랍을 조금 열어놓을 테야.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