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 계획이 상(上) 계획이다: 미국 취준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황당하지만,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미국으로 갔다.
(심지어 수중에는 $1,000밖에 없었다.)
계획은 없었지만, 대략적인 윤곽은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과 영어 실력 덕에, 나는 첫 직장에서 주로 글로벌 업무를 담당했었다.
이왕 글로벌 업무를 할 것이라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특히 개인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FAANG의 미국 본사에서 내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퇴사 후,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되게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믿는 구석은 미국 시민권이다. 아무리 미국에서 좋은 학부를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에서 취업하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이미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비자 스폰서십을 받지 않고서도 바로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자에 대한 압박 없이, 구직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동안 동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주 4회 4시간씩 일하며 시급 $22에 팁까지 받았기에, 퇴직금을 아껴가며 하루살이처럼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믿는 구석은 나의 영어 실력과 미국에 대한 익숙함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몇 년간 살았던 경험 덕분에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취업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미국에 있었다. 덕분에 미국에서의 이직을 패기 있게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취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을 다녔기에, 여러 미국 회사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 "어서 옵셔," 모셔갈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구직을 해야 했던 4년 전과 상황이 별반 다르디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기업의 리크루터에게 절절한 콜드 메일을 보내보기도 하고, LinkedIn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추천(referral)을 부탁하기도 했다. 기껏 쌓아온 경력과 전혀 다른 분야의 직무나 조금 규모가 작은 회사에도 가리지 않고 지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에서 취준생이었을 때 서른 개 정도의 기업에 지원했었다면, 미국에서 취준 할 때는 몇백 개의 기업에 지원서를 보낸 것 같다. 불합격 메일(이라도 오면 양반이다...)을 삭제하고, 새로 올라온 공고에 지원하는 일이 나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났을 때, 드디어 지금의 회사에 합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