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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P는 나와 같이 윤이라는 이름을 쓰는 동네 친구, 집요한 성격의 지적인 친구이나 세상사를 모두 구조화하고 뜯어보는데, 탁월하여 가끔 조언을 구하는 친구다.


작년,

이제 막 독거노인이 된 P은 어느날 아침에 세상에 자신이 혼자 남겨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다녀온지 2일만에


이른 아침,

형의 전화로부터 어머니의 임종을 듣게 되었다.


아내와 딸로부터의 처절한 분리를 느낀지 2년

그 분리감을 수용하는데 있어 소위 수용곡선이 2년이 걸려서 부정과 분노 타협을 거쳐 이제 겨우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점이었다.


P의 표현으로는 뿌리가 송두리채 뽑히는 느낌,

법없이는 살 수 없는 아버지와 법없이도 살 수 있으셨던 P의 어머니는

인생을 열정적이었지만, 좌충우돌하며 모나게 살아왔던 P가 마음으로 의지했던 안식처였다.


외출했다가 해질뉘역 집으로 향하는데, 막상 집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P는 며칠전 다녀온 길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길이고, 유달리 막내에게 애착을 가지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P를 보고 안도감에 훌훌 세상을 털어버리신듯 했다.


나름 강인했던 P는 어머니를 보낼때까지 그가 기억하지 못한 아가시절의 눈물을 기억하려는듯 무지하게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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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내고 그해 세밑을 지나는 마지막 주에

P는 심장마비로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지방을 전전하느라 먹던 혈압약을 반년이상 끊은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P는 마지막으로 의사가 이번에는 "죽을 수도 있어요" 하는 말을 들었을때, 예전 같으면 두려움에 떨었을텐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몇주전 가셨던 어머니를 볼수 있는건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순간 이제 "집에 가는구나"라고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했다고 한다.


다행히 응급처치는 잘 되었고, 새해 첫 주에 퇴원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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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그가 지방으로 내려가기전, 오랜만에 적당한 습도의 6월 여름,

다시 P를 만났다.


피부색은 약간 거무튀튀해졌고, 예전의 다부짐보다는 적당하게 슬림해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건강은 많이 회복했고, 그 사이 요양보호사라는 자격을 따기위해 두어달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호기심에 별걸 다하는구나생각에 그건 왜 한거야라고 물었다.


"어느날 유튜브 보다가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상을 보게 됐어. 요양원에 대한 내용이었지. 많은 노인들이 마지막을 하는 곳이 자신의 자신의 집이 아닌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건데, 당장은 아니지만 나 역시 저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 뭘 벌써부터 그런생각을 해, 준비하는건 좋지만 너무 이른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노후는 다가올 가장 확실한 미래이고, 그건 비가역적으로 호전될 수 있는게 아니지. 그리고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게 있고,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


- 늙어도 죽을라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지, 죽으려고 사는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사는거지. 하지만 나처럼 행복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죽음에 대해 미리 알아두고 대처할 필요가 있어. 이 과정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은 돈을 더 버는 것이 아니라 노화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지"


순간 P는 개똥철학의 달인이자 잡지식의 괴벨스임을 상기하여, 그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타이밍을 놓쳤다. 늘 한두개는 들어줄가치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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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던 성장을 위해 애들을 많이 낳는걸 독려하던 시기가 있는데, 베이비 부머라고 하는데, 이 베이비 부머들은 노력과 비례하여 보상이 주어진 세대였지.


이 부머들이 성장하는 때는 아무문제가 없는데, 성장이 멈추면 그 이전에 없어던 일들이 벌어지는거야.

성장이 멈추면서 이제는 퇴화되고, 노화되는 단계로 들어선거지.


우리는 이 설국열차에 끝에서 두세번째 칸에 탄 세대야.


이 설국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해서는 어떠한 모습이 될지는 우리는 알 수 없지. 아마 이미 죽고 없을테니까.

내가 보았던 앞 칸의 사람들은 전부 열심히 살고, 충실히 살아왔던 사람이지. 노화는 그들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거 같아. 행여 알고 있더라도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인 듯해"


- 옛날처럼 적당히 살고 죽어야하는데, 너무 삶이 길어졌어. 돈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졌어"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을까"


"우리세대가 대학입학때 100만을 찍었지. 우리가 피크지. 우리 세대부터 변화가 시작해야 할듯해. 노화를 준비하고, 죽음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되어야 된다는 거지. 항상 피크부터 새로운 변곡점이 되는거지"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요양원에 가게 될지, 일본처럼 내집에서 1인 재택사를 하게 될지. 조력사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지에 대해 나 자신의 엔딩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어.


국가가 이런 부담에 대해 대응하고 있으니 우리는 나름 알차게 그 제도적 장치에 대해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 맞는 얘기야. 그런데 뭐 뾰족한 수가 있나?


P는 나를 바라보며,

"없어. 당분간 열심히 살아가는 수 밖에"


- 열심히 살지마. 축나면 요양원 가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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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던 친구였고, 인식의 전환은 나쁜 것은 아니나 대책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그의 마지막 집은 "어머니"가 아님은 당장은 알 수 있었다.


P의 마지막 집은 어디가 될것인가, P가 요양원에 본 풍경과 겹쳐 보이며


나의 마지막 집은 내 가족과 함께 하는 이집인가 혹은 다른 어디일까?

다만

절대로 나는 내가 어떻게 죽는지 모른채로 죽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의 마지막 선택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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