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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Mar 19. 2018

겨울이 따뜻한 홋카이도?!

추운 겨울을 나려고 홋카이도로 가는 철새 가족

우리가족이 겨울마다, 그것도 두달씩이나 홋카이도에 오는 이유를 얘기해달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가족 모두 스키타는 것을 즐기므로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설원의 풍경을 즐기려고

겨울에 더욱 맛있는 홋카이도의 해산물 등 먹거리를 위해


그러나 위의 모든 것을 다 합해도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고베의 추위를 피하려고.”


이게 무슨 헛소리? 고베는 분명 혼슈에 위치하며 겨울에도 결코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남쪽나라. 반면 홋카이도는 5개월의 겨울, 그것도 영하 20도까지도 떨어지는 추위가 계속되는 차디찬 북녘땅.

그런데 추위를 피하려고 고베에서 홋카이도로 온다고? 이건 분명 넌센스다.

이글을 읽는 이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걸 어쩌겠는가. 그럼 이 넌센스에 대해 재량껏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첫째, 고베의 우리집은 겨울이 너무나 춥다. 

겨울철 고베 우리 집에서 나의 기본복장은 유니00의 히트텍, 폴라티셔츠, 스웨터, 그 위에 무릎까지 오는 오리털 자켓이다. 양말 두개 신는 것은 필수, 어쩔 때는 모자에 장갑까지 착용하곤 한다.  이런 복장으로 거실에 앉아 있으면 참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내 친구들도 대부분 이런 복장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은 말 안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난방이 고장났느냐, 구두쇠라서 그런거냐, 한다면 물론 그건 아니다. 실내 온도는 20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난방을 하는 것이니 권장 적정온도로 난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느끼기에 따뜻하다 싶을정도로 난방을 한다면, 아마도 한달 난방비가 100만원은 나올 것이다.


고베의 겨울을 나는 기본자세. 담요두르고 지내기


그럼 왜 이렇게 집이 추울까?


일본은 사실 지역별 기후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도쿄, 오사카,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고베가 있는 혼슈 지역은 온대기후, 홋카이도와 혼슈의 고원지대는 냉대기후, 그리고 남쪽 오키나와를 비롯한 섬들은 열대기후에 속한다.


혼슈지방의 여름은 참기 힘들 정도로 고온다습하고 태풍도 잦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이러한 여름의 기후를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가옥이 설계되었다. 무엇보다도 통풍이 잘되게 하는 것이 관건. 방 사이에 벽도 안 만들고, 흡습력 좋은 다다미를 까는 것은 기본.  일본의 전통가옥들은 방마다 다 연결되고 많은 창들이 바깥으로 뻥뻥 뚫려있다. 겨울에는 그 뚫린 구멍과 틈새로 바깥의 추위가 스며들어올 것임은 물어보나마나이다. 이런 방식은 놀랍게도 현재까지도 이어져, 현대 일본가옥들의 건축에 있어서도 단열, 이중창, 바닥난방 등을 구비하는 집이 매우 드물다. 또한 그렇게 짓고 싶다 하더라도 터무니 없이 비싼 비용 때문에 쉽게 실행하기 힘들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일본인들이 갖게된 의식 ‘ 여름에 강한 집을 만들고 겨울은 그냥 참고 견딘다’, ‘춥게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 는 믿음의 뿌리는 참으로 단단한 듯 하다. 춥게 지내는 것이 각종 질병과 사망률을 높인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무색하게 말이다.


대신 일본의 대기업들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난방용 소형 가전제품을 끌어안고 산다.  가운데에 히터가 들어가 있는 테이블을 두툼한 담요와 연결하는 고타츠, 온갖 종류의 히터, 전기담요, 전기방석 등등등…..어쩔 때는 난방에 취약한 일본가옥이 계속 유지되는 현상의 뒤에 일본 가전제품 회사들의 음모가 숨어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고베의 산중턱에 위치한  우리집은 1980년에 건축한 양옥집인데, 역시나 이와 같은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산에 있으니 겨울에는 간혹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엄청 센 곳인데, 단열재 따위 당연히 없고 바닥난방 물론 없고, 집 여기저기 창은 정말 많은데 하나같이 얇디얇은 단일창이었다. 도저히 겨울을 감당할 용기가 안난 우리는 돈이 궁핍한 와중에도 살기위해(!) 집 전체의 창을 다 이중창으로 바꾸었다. 바닥난방은 억소리나게 비싸서 아쉽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가옥의 기본전제인데 일본에서는 이게 뭐라고 사치품 취급을 받나 분통이 터졌다.


창을 이중창으로 바꿨음에도 겨울의 추위는 혹독하기 그지 없었다. 일단 벽이 얇아서 찬공기가 금새 안으로 전해지고, 창이 많다보니 이런저런 틈새를 타고 겨울바람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스물스물 기어들어온다. 중앙난방식이 아니라 개별난방식이라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미리 거실 데워놓기, 자기전에 각 침실 난방 틀어놓기 등은 부지런히 잊지 말고 해야하는 하루 일과이다. 난방의 혜택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복도와 화장실, 밑에 층에 있는 욕실은 그야말로 북극지방. 볼일 보기와 목욕이라는,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을 위해서 한스푼의 용기가 필요하다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특히 자기 전 목욕은 밤에 이불을 파고드는 추위와 싸우며 편한 잠을 자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 코스. 따뜻해진 몸으로 길고 추운 밤을 이겨내는 것이다. 일본에 목욕문화와 온천시설이 발달한 것도 분명 집이 추워서라는데 500원 건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지금의 우리집을 짓고 30년동안 그 집에서 사셨던 분들은,  도대체 꼬마들을 데리고 그 엄동설한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겨울 홋카이도의 일반가옥을 경험하고 나니, 이건 천국이 따로 없었다. 홋카이도는 여름철이 건조, 온화하여 혼슈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매우 쾌적한 기후이다.  그대신 겨울은 많은 눈을 동반한 추운 날씨가 계속되니, 혹독한 추위에 견디는 집을 만드는 것이 가옥건축의 핵심이었다.  그 결과 혼슈와는 전혀 다른 주택문화를 갖게 되었다. 홋카이도 개척 초창기부터 북유럽 등의 건축기법을 받아들여 건축의 수준 또한 꽤나 높은 편이다.

홋카이도에서 체류했던 집. 두툼한 벽, 이중창, 커다란 등유난로가 있어 따끈따근


홋카이도. 따뜻한 집안에서 눈 덮인 밖을 바라보는 곰순이


대부분의 집들은 단열과 이중창이 기본. 주택들은 커다란 등유탱크를 집 옆에 두고 24시간 등유난로로 집을 데운다. 바깥기온이 영하 20도로 내려가도 워낙 단열이 잘 되어 있어 실내는 늘 따뜻하다. 손발이 시렵지 않고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이 작고 낡은 홋카이도의 렌트하우스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포근한 선물, 그 자체이다. 고베의 추위를 피하려고 홋카이도에 온다는 말이 이제 좀 이해가 되시는지?




겨울에 홋카이도보다 고베가 더 춥게 느껴지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바로,  홋카이도의 겨울은 춥지만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집 안은 따끈따끈하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흰 눈으로 가득한 설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니 매일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름다운 눈의 풍경을 만끽하느라, 눈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하느라 추위를 느낄 틈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도 개도 눈 위에서 노는게 즐겁다.


고베는 비록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계절풍의 영향으로 체감온도는 훨씬 춥다. 서울의 추위가 ‘찡'하게 얼어붙는 추위라면 고베는 ‘뼛속을 스며드는' 추위라 비견할만하다. 칼바람이 몸을 파고드는 고베의 추위는 인정사정 없다. 눈따위가 있을리 만무한 고베에서 겨울은 진정 ‘견뎌야 하는' 고달픈 계절인 것이다. 집 안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춥다는 명제는 온도계의 숫자 저 너머에 있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홋카이도에서는 어른들은 아름다운 설경을 구경하느라, 아이들은 눈에 파묻혀 뛰어노느라 추위 따위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홋카이도는 집 안도 따뜻하고 집 밖도 따뜻하다는 넌센스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가?


홋카이도.  추위 따위는 잊은채 하루종일 밖에서 논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추운 겨울을 나려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먼길 날아가는 철새들 마냥 고베에서 배 타고 북쪽 홋카이도로 건너왔다. 이 곳에서 따뜻한 두달을 만끽한 후, 벚꽃이 만개한 4월의 고베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때쯤에는 고베의 추운 우리집도 봄 햇살에 충분히 데워져 있으리라.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홋카이도 3월의 햇살이 오늘따라 더 따사롭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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