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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Mar 01. 2024

우리, 제주도 잘 온 거 맞는 거지?

ENFP 엄마 2명과 4명의 아이들의 난리블루스 제주도 한 달 살기

공사소음으로 가득 찬 집을 뒤로하고

일단, 제주도를 즐겨야 이 기분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진경아, 우리 오늘 어디 가기로 했지?

- 그런 거 안 정했는데

- 아!

- 어디 가야 되지?

- 지도를 펼쳐봐. 집에서 제일 가까운 데부터 가자.


그래서 가기로 한 곳은 한림공원.

그래. 출발하자. 거기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아이들 4명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유모차 2개와 카시트 2개를 들고, 집과 함께 대여한 우리의 7인승 카렌스를 주차장에서 찾았다. 설마 저 차는 아니겠지 싶은 차가 우리 차였고, 세차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전에 빌린 분들의 흔적이 가득한 차를 보고 다시 멘붕이 왔다.


- 사장님, 저희 차가 너무 더러운데, 세차가 안 된 걸까요?

- 아, 죄송해요. 어제 비가 와서 저희가 세차를 못 했어요. 이번주에 날 좋을 때 한 번 갈게요. 


오늘은 날이 참 좋았고, 아까 오신 김에 세차를 해주셨으면 됐잖아요.라는 말을 해버리면 아까 하지 못 한 말까지 터져버릴 것 같아, 이번주에 오신다니 며칠만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카시트를 설치하고 아이들을 태우려는데 카렌스 운전석 뒤에 카시트를 설치하고 나니, 큰 아이들이 뒷자리로 들어갈 의자가 접히지 않는다.


하............ 그래. 꼭 차를 앞으로만 타라는 법이 있겠니?  

그날부터 아이들은 매일 트렁크로 타고, 내리 고를 자유자재로 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트렁크 문을 열고 의자를 넘어 자리에 앉는 자기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처럼 느껴졌는지, 7살 아이들은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신이 났다. 어른들의 열받음이 아이들의 놀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출발~~~~~~~~~~~~~~~~~~~~


- 언니, 에어컨에서 따뜻한 바람 나와.

-  악....................................... 그만해!!!!! 그만!!!!!!!!!!!!!!


아침에 눈 떠서부터 지금까지 멘붕의 연속이었던지라, 차 안에서 진경이와 나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로 시작하려다가, 이제 막 시작인데 아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책부터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아 서로에게 할 말을 고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경이를 한 달이나 되는 여행의 파트너로 떠올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건 이런 황당함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진경이가 아닌 다른 이었다면, 체크를 제대로 한 것이냐, 그러니 조금 더 알아봐야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서로를 탓하고, 여행 시작도 전에 기분을 망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진경이라는 게 다시 한번 고마웠고, 든든했다.


 진경이가 동아리 회장을 맡았을 때, 여름방학을 맞아 동아리 전체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돈은 없고 제주도는 가고 싶었던 우리는, 한참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하던 선배에게 부탁해 선거연설을 하던 운동장에서 목이 외쳐라 선배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해,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이었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텐트와 코펠들을 같이 빌려줬고, 자전거로 달리다가, 아무 바닷가에나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제주도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대학생의 낭만이 가득할 것만 같던 여행은....... 자전거 페달을 밟은 지 30분 만에 깨졌다. 동아리 여자 후배 1명이 자전거에서 넘어지며 발목을 다쳤다. 일단 남자 후배가 여자 후배를 태우고 다녀보자 했는데,

문제는 동아리원 전체에서 가장 튼튼한 여자 후배였고, 얼마 가지도 못 해 남자 후배도 나가떨어졌다. 20년도 더 전이라 그 후에 어떻게 다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사진마다 그 후배가 있었던 걸 보면 끝까지 어찌어찌 잘 다녔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배만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닌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엉덩이가 너무 아팠고, 제주도에는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많았다. 그제야 동아리원들 중 누구 하나 자전거 일주를 해본 이도, 자전거를 많이 타본 이도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제주도 여객 터미널에서 우도까지도 못 가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처음부터 2박 3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그때의 회장 김진경 양과 회장의 오른팔 양미리 양은 지금도 그렇듯 그때도 그랬나 보다. 하지만 여행의 맛은 그런 좌충우돌 우여곡절의 묘미인지라 그때의 좋았던(?) 기억으로 우리는 또 제주도에서 이러고 있다. 하....... 사람의 망각이란.


오만가지 생각으로 막막했던 순간, 제주도가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협재해수욕장. 그래. 이거지. 우리가 제주도에 온 이유.

좋은 집, 좋은 차를 위해서 제주도에 온 거 아니었고, 그건 그저 여행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여행은 결국 즐기는 자의 것이니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기로 하고 우리는 제주도의 첫 바다에 발을 담갔다.

물론, 한림공원에 가야 하고,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오늘은 가볍게 발만 담그며 제주도를 맛보는 걸로

아이들과 합의를 이야기를 잘 나누고 조심조심 옷이 물에 젖지 않도록 신경 쓰며 물놀이를 하는데

- 안돼~~~ 세아야~~~~~~~~~~아니야~~~ 아니야~~~

라고 아무리 불러봤자, 이미 늦었고, 세아는 젖었고, 바닷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여기는 제주 도니까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싶고 그런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물을 묻히지 않고 논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고(응?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왜 자꾸 도전하는 거지?) 결국 우린 한림공원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협재해수욕장에서 마음껏 놀렸다. 바다에서 다음 일정 생각하지 않고 놀기 위해 한 달 살기를 온 거라는 초심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다음날도, 어김없이 공사장의 맑고 고운 소리로 아침 일찍부터 눈을 떴고, 일찍 일어난 김에 세수도 하지 않고, 제주도 동네산책을 다녀왔다. 제주도에 여행 올 때마다 숙소에서 나와 차를 타고 다른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들이 내내 아쉬웠다. 제주도의 마을을 한가로이 걸어보고 싶었는데 늘 2박 3일의 여행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꿈꿀 때 마치 제주도 사람인 것 마냥 마을을 원 없이 산책해야지, 걷고 또 걸어야지가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는데 드디어 그 로망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왕 나온 거 어제 못 간 한림공원 다시 가볼까? 싶어 그대로 한림공원으로 출발했다. 세수도 못 하고 나왔지만 집에 들어가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준비물 챙기면 또 한나절이 지날 것 같아 가방에 자동차키는 있으니 그대로 출발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으려고 하는데

- 어? 우리 지갑 안 가져왔네?

- 어?

- 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어? 어? 하다가 빵 터졌고, 정말 서로가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앞으로 우리에게 이런 어이없고, 기 막힌 일이 얼마나 일어날까 싶어 무서우려던 찰나에,

"어? 가방에 현금 있다" 해주시는 김진경 씨. 진경아, 한 가지만 하자 한 가지만.


 한림공원은 우리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 싶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입장한 한림공원은................................... 힘들었다. 아이들은 10분도 채 걷지 못하고 업어줘, 안아줘, 힘들어로 징징거리기 시작했고, 나가는 길이 어디 있나 찾아보니 여기 10만 평 대지란다.(그걸 이제 알았니? 너희들의 머릿속에는 사전 조사라는 것은 없는 거니?) 나가는 출구를 찾는 것보다 들어오는 입구로 나가는 게 더 빠른 길이였지만, 막무가내 엄마 둘은 그래도 들어왔으니 다 봐야 하지 않겠니 정신으로 아이들을 얼래고, 달래고, 업고, 태우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처음에는 동생들 유모차도 밀어주던 7살들이,

결국은 유모차를 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한림공원ㅠㅠ

겨우겨우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는 제주도의 노을도 보이는데


공사장도 같이 보인다.



하........... 우리 제주도 잘 온 거 맞는 거지?


� 이 글은 바야흐로 7년전, 2015년 때 다녀온 제주도 한 달살기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벌써 16살, 12살 사춘기 소녀들이 되었답니다. 


#제주도한달살기

#제주도고난살기

#애들이다커서쓰는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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