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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Mar 08. 2024

우리, 굿이라도 할까?

ENFP 엄마 2명과 4명의 아이들의 난리블루스 제주도 한달살기

저녁을 먹은 후부터 재석이의 기침이 심상치 않았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바다 물놀이를 하고 난 후 감기가 심해진 듯 싶었다.

조심성 없는 엄마 둘이 제주도 바다를 보고 정신이 나가 아이들의 컨디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나.

아침에 바로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 찾아보다 잘 모르는 시골 동네 병원보다는 시내 큰 병원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병원 위치를 찾아보고 잠이 들었다.


밤새 기침과 열이 나서 재석이도 진경이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병원을 갈 준비를 했다. 아이가 4명이다 보니 나갈 때마다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는 것도 큰 일이다. 오늘은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나가기로 했더니 마음이 더 급하다. 그래도 엄마가 2명이라 말하지 않아도 역할 분담이 착착이다. 엄마 한 명이 도시락을 싸면 다른 엄마가 씻기고 옷 입히고, 엄마 한 명이 설거지하면 다른 엄마가 이불 정리와 청소를 한다. 남편 하고는 맨날 네가 해라, 나 이거 다 할 동안 뭐 했냐, 말 안 하면 못 하냐, 찾아서 좀 해라 하며 싸우던 일들이 엄마 두 명이니 착착착이다.  


다만, 아들 둘 엄마 김진경은 딸들의 옷 입히기 순서를 모른다.

아들은 티 하나, 바지 하나, 양말 두 짝 던져주면 끝이지만, 딸들은 순서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다. 한 가지라도 놓치거나, 공주님의 기분을 거스를 경우 오늘 안에 외출을 못 하는 수가 있다. 멘트 하나, 목소리 톤 하나까지도 신경을 쓰며 딸과 옷 고르기 전쟁에 돌입해야 한다.


일단 먼저, 레이스 러닝과 반바지 속옷을 입은 후에, 티나 치마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고르고, 그것에 맞는 색깔과 분위기를 가진 짝꿍을 찾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 한 번에 선택되었다면 오늘은 로또를 사도 되는 날이다. 보통의 날들은 오늘의 치마를 먼저 골랐다면 바닥에 치마를 내려놓고, 상의 1번 옷을 대보고, 2번 옷을 대보고, 3번 옷을 대본다. 1번 상의로 결정하고 입었지만, 막상 입어보니 어울리지 않는 다면 다시 2번, 3번 상의를 입어본다. 여기서 엄마와 딸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시작된다. 핑크에 핑크를 입겠다고 하는 딸과 핑크에 흰색을 권유하는 엄마 사이에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어차피 딸의 결정에 따르게 되지만 딸 엄마는 매일 그 사실을 잊고 아이에게 자신의 취향을 권해본다. 여기에서 딸의 심기를 잘 못 건드리는 경우

아이는 레이스 러닝과 반바지 속옷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딸과 엄마의 합의가 잘 이루어져 상의와 하의를 입었다면, 여기에 어울리는 양말을 찾아야 한다. 오늘 의상에 발목 양말이 어울릴지, 종아리까지 올 장목 양말이 어울릴지, 무릎까지 오는 니삭스가 어울릴지, 올 스타킹이 어울릴지 찾아야 한다. 오! 양말을 번에 찾았다면 아주 운이 좋은 날이다. 이제 거의 왔다.


다음은 오늘 의상에 맞는 헤어스타일과  필요하다. 머리를 것인지, 묶음을 것인지, 양갈래를 것인지, 양갈래를 것인지, 양갈래를 사탕모양을 것인지, 묶음으로 묶을 것인지, 묶음으로 묶은 것인지, 사탕 모양을 만들 것인지, 모양을 만들 것인지(헉헉헉...)를 공주님이 정해 주셔야 한다. 공주님의 요청에 맞춰 머리 모양을 만들었지만 거울로 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 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보통 머리모양 하나를 만드는데 평균 4~5개의 머리끈이 필요하고 사탕머리를 하거나 고난도의 헤어스타일

도전할 때는 10개 이상의 머리끈이 필요하다.


자, 이제 머리 모양이 완성됐으면 여기에 어울리는(하...... 지치면 안 돼) 핀을 골라야 한다. 딸 엄마라면 응당 10개~30개까지의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들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오늘의 OOTD와 어울리는 핀을 한 번에 찾으려면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자, 이제 다 입었나? 드디어 나가나?

NO!! 아직 오늘의 가방과 액세서리(반지, 팔찌, 목걸이, 인형)와 대망의 신발이 남았다. 두둥!!!!!!!!!!!!!!!!!!!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

 

그러니 지나가다 겨울에 샌들을 신었거나, 화창한 날 장화를 신고 있는 여자 꼬맹이를 보거든 절대로 그 부모를 탓하지 말라. 이 전쟁을 아침마다 치르고 가장 마지막 단계인 신발 신기 단계에서는 포기 상태였을 테니..


언니와는 다른 버전이였던 세아. 이럴 때는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 걷는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진경이도 매일매일 이 전쟁을 지켜보며 "나는 딸 못 기르겠네"라고 포기 선언을 했지만, 이로부터 몇 년 후, 진경이는 셋째 딸을 낳았다.


아, 재석이 병원을 가는 길이였지.

애월에서 제주 시내까지 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초행길이라 그랬는지 1시간이나 걸렸다.

진료 결과 간단한 감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폐렴이란다.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서 일단 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다행히 밤보다는 열이 많이 내렸고, 아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제주 시내까지 온 김에 경마공원을 가기로 했다.


넓은 잔디밭에 스케일이 다른 놀이터, 아이들 1인 자전거도 공짜, 5인 자전거도 공짜, 유원지에서 몇 만 원 하는 꽃마차도 몇 천 원이다.

이때까진 좋았지
몇 바퀴 돌고는 페달 돌릴 힘도 없다. 오늘도 사서 고생.


매일 나가서 점심을 사 먹어야 하는데, 막내 2명 빼고도 4인의 식사비가 만만치 않아서 오늘부터 점심 도시락을 싸 보기로 했다. 나름 사전조사를 통해(드디어 제주도 도착 4일 만에 계획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경마공원이 잔디밭도 있고, 도시락 먹기 딱 좋아 오늘부터 도시락을 준비했다.


도시락이라고 해봤자 찬밥과 조미김, 소시지뿐이었는데도 밥이 모자라 컵라면까지 사서 먹을 만큼 잘 먹는 아이들이었다. 시장이 반찬이고, 풍경이 반찬이고, 분위기가 반찬이다. 비싼 제주도 맛집 저리 가라의 호평을 받은 후 앞으로 점심은 이렇게 준비하기로 했다.



경마공원답게 말도 볼 수 있고, 말 타기도 공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제주도에 있는 동안 백 번 오기로 아이들과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다.(지만 2번밖에 못 왔음)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약을 먹은 재석이의 컨디션이 급 나빠지기 시작했고, 세아의 이마에도 심상치 않은 온도가 느껴졌다.

결국 하루 종일 놀 것 같았던 경마공원에서 2시간도 놀지 못하고 철수했다.

제발,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기를............................

재석이는 입원을 했고, 세아는 구내염에 걸려 링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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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아, 우리 굿이라도 할까?



# 이 글은 바야흐로 7년 전, 2015년 때 다녀온 제주도 한 달 살기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벌써 16살, 12살 사춘기 소녀들이 되었답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제주도고난살기

#애들이다 커서 쓰는 육아일기

#지금 읽어도 힘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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