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면 서점을 찾는다.
베스트셀러 부터 다양한 문구와 테마로 꾸며진 코너를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기호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책이 세로로 꽂혀있는 진열대 보다는 가로로 누워있는 평대가
트렌드 파악에 유리하다.
거기에 끌리는 책 두어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대부분의 약속이 술과 함께하기에
아무리 갖고 싶은 책이 있어도 잃어버릴까 사지 못하고 제목만 쓱 메모한다.
최근 그림에 대한 생각이 늘고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관련 책들을 찾아본다.
서점에서 이런 책들을 찾아보려면 ‘예술’ 혹은 ‘취미’라는 글자를 따라다녀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좀 씁쓸하다.
그린 그림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고 취미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바라는 그림 그리기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카테고리는 뭘까 잠시 생각해봤다.
자기계발, 실용, 경영이 더 가깝다.
내 삶과 동떨어져 즐겁지만 안해도 그만인 취미로의 그림은 지양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필요하게 고귀해지는 것 또한 반갑지 않다.
생각을 전달하고 기억을 추억하는
기록의 연장선으로 다뤄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림을 도구로 활용하고 싶고
많은 그리머들로 하여금 그림을 ‘쓰는’ 쪽으로 유도하고 싶다.
교토 여행 중 이었다.
나는 닭요리가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히라가나로 씌여진 음식점 이름을 들고 있었지만
구글맵에 입력할 줄 몰랐다. 여전히 히라가나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는 방법을 모른다.
닭고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길에서 사람들을 붙잡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고, 일본인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
1. 읽을 줄도 모르는 히라가나가 적힌 종이
2. 그 단어를 가리키는 손가락
3. 온갖 부탁과 절박함과 배고픔이 담겨진 눈빛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렇게 몇 번을 실패하고 편의점이나 갈까 하던중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가방에서 펜을 꺼내더니 내가 가진 종이를 뒤집었다.
성냥 두개를 그린다. 손가락으로 본인과 나를 번갈아 가리킨다.
‘아, 우리 둘이구나 현재 위치!’
그러더니 긴 직선 두개를 그린다. 다시 손가락으로 땅을 가른다.
‘이 길!’
이윽고 여러 선이 가지를 몇 번 뻗더니
한 곳에 별표가 그려진다. 목적지다.
접어들어가야 하는 코너에 다시 뭔가를 그린다.
네모를 하나 그리더니 네모 중간에 커다란 마름모를 그린다.
뭔지 모르겠다. 일단 받았다.
유일하게 아는 일본어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시나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라도 된듯
그 종이를 받아들고 걸었다.
5층 짜리 네모난 건물에 커다랗게 매달려있는 마름모꼴 간판
빠칭코 건물이었다. 소년은 내가 꼭 끼고 돌아야하는
중요한 지표인 건물을 단 두개의 도형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신선한 닭고기 화로구이로 배를 채웠다.
이 약도가 예술작품인가? 소년이 가진 취미의 산물인가?
그저 나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어떤 작품보다 내게 값진 물건이었다.
이 일은 내게 커다란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그림은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림은 우리 생활에 얼마든지 ‘사용’되어질 수 있다.
때문에 익히기만 한다면 누구나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네모와 마름모를 그리는데 반사광을 이해하거나 3점 투시 원근법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고관절 각도에 의한 근육의 흐름이나 1:1.618의 황금비를 몰라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그림은 잘그려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저 관찰력과 최소한의 표현력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두려움을 잊으면 된다. (이게 어렵다)
약도는 몇 년간 간직하다가 아쉽게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다.
그 약도는 음식점의 위치만 알려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그 소년에게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