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장보기, 저렴하면서 안전한 집 찾기
도착하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개학까지 일주일 채 안 남기고 미국에 간 터여서, 개학하기 전에 살 집을 구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것이 당시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개강 직전에야 보스턴에 갔으므로, 학교에서도 우리가 제 때 집은 구할 수 있을지 많이 염려해 주셨다. 보스턴은 대학이 많은 곳이므로, 대부분의 집에 8월 말~9월 초쯤에 계약이 이루어지는 데, 우리는 이미 8월의 마지막 주에야 미국을 갔기 때문에 많은 방들이 이미 계약이 완료된 상태였다.
1. 대중교통 이용이 수월할 것 (학교까지 버스나 전철 노선이 연결된 곳)
2. 안전할 것 ( 늦은 시간에도 인적이 드물지 않거나 큰길에서 가까울 것)
3. 집세가 저렴할 것
4. 생활이 편리할 것 ( 마트가 가까운 곳 )
집을 구하면서 가장 고려했던 부분들이다. 차가 없이 살아야 했으므로, 일단 1번이 많이 중요했다. 다행히 학교는 전철역에서 가까우니(Green D line의 Fenway역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였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집을 구하면 될 거 같았다. 1번과 2번 4번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보다 일 년 전에 같은 프로그램을 이수한 선배는 보스턴 Green line 중 B라인이 지나가는 Commonwealth Ave 지역 집을 추천해주었다.
위의 지도에서 Green line의 B라인의 경우, Packards Corner역부터 종점인 Boston College역까지 전부 Commonwealth Ave 상위 위치해 있다. 노선도만 보면 B라인이나, C라인이나, D라인의 길이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아래, 실제 지도 위에 투영한 전철 노선도를 보면 사실상 D라인의 경우 B라인과 C라인 보다 갈라진 부분이 두 세배는 더 먼 지역까지 커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B라인과 C라인은 역 간 간격이 촘촘해서, 거의 건널목마다 전철이 선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런 만큼 그 지역에 살면 교통이 편하고, 학생들이 많은 지역이라 비교적 안전하고, 생활하기도 편한 지역이다.
특히 작지만 없는 게 없는 하나뿐인 미림(Mirim Oriental Groceries)은 어렸을 때 갔던 구멍가게 느낌의 작은 가게로 김치는 물론 한국의 만두부터 한국 과자, 유자차까지 식료품이며 식재료가 없는 게 없었고, 심지어 김을 쌀 때 쓰는 김발과 같은 도구도 팔았다. 이 가게는 Allston(Harvard Ave - 사족이지만, 왜 이 도로 이름이 Harvard Ave인지 모르겠다. 캠브릿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와는 좀 멀리에 있다)에 있었는데, Commonwealth Ave Allston역에서 5분 거리 정도로 가까웠다. 그곳에서 각종 한식 식재료와 과자를 사며 향수를 달랬었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현재에는 문을 닫은 듯하다. 이 근처에는 본촌치킨(교촌치킨 맛이 나는)이며 한식을 파는 Korean Garden, 한국식 짜장면을 파는 북경반점 등 한식 음식점들도 제법 있고, 일종의 소규모 한인 타운이라, 이래저래 한국 생각이 나는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Commonwealth Ave에는 미림이 아니더라도, 미국식 마트인 Shaws, Whole Food 등이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서, 생활편의성이 정말 좋다.
커먼웰스 에비뉴는 대로변인만큼(?) 각종 부동산도 많아서, 8월의 보스턴의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하루 동안 6곳이 넘는 집을 보았다.
1번 후보
- 대로변에서 5분 거리
- 가격 예산 범위 내
- 많이 좁음
- 1층: 창 밖에서 집 안이 잘 보이고, 불안한 마음이 듦
-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림
2번 후보
- 한적한 주택가 이층 집의 이층: 일층과는 현관부터 나눠져 있음. 문 열면 좁고 긴 계단이 나타난다.
- 대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10분 거리
- 너무 큼
-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할 거 같다
3번 후보
- Commonwealth Ave에서 2분 거리의 2층, 1층엔 상가가 있다.
- 너무 대로변이라 시끄러움
- 전에 쓰던 사람들이 너무 엉망으로 집을 써서인지, 어지러워서 집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음
- 방들이 약간 좁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돈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가격이 비쌌고, 둘이 상의한 예산 안에 드는 집은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도 마음에 안 들었다. 대로 방향으로 창문이 크게 나서, 프라이버시가 염려되는 집이라거나, 두 명이 살아야 하는 데 방 하나가 크고, 하나는 너무 작다던지, 대로에서 너무 안쪽으로 들어간다던지, 집은 많은데 마음에 꼭 드는 집은 없었다.
마침내 예산을 조금 넘기는 하지만 적당한 집을 구했다.
1. Green line의 지하철 역에서 5분 거리 내에 있고
2. 깨끗하고
3. 현관과 집에 이중으로 잠금장치가 있어 안전하고
4. 크기도 넓다
예산을 넘기는 하지만, 우리가 비싸서 망설이자, 중개인이 집세를 약간 깎아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국 집을 구해서 가계약서까지 작성을 마치고 당시 머무르던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는데, 돌아와서도 예산을 넘는 금액으로 인한 부담감과 짧은 기간에 일 년 살 집을 정하다 보니 정말 잘 구했나 하는 고민이 계속되었다.
당시 내가 머무르던 게스트 하우스는 3층까지 있는 굉장히 큰 집으로 층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있는 하숙집으로 우리 같은 학생부터, 사회 초년생, 박사 과정을 마치고 포스트닥터 중인 연구원, 이민을 준비하는 분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머무르고 계셨다. 마침 그 게스트하우스에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오신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곧 그곳에서 지하철로 한정거장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해서 하숙집을 운영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가 집을 구하는 것을 보고 그 집에서 세 들어 사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셨는데, 방세가 우리가 계획했던 방세보다는 비쌌고, 하숙집이 위치할 Newton은 학교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래서 하숙을 하지는 않으려고 했었는데, 정작 예산보다 비싼 집을 가계약하고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하숙이 여전히 좀 더 비싸긴 하지만, 여러 장점이 있었다.
1.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제공해주시므로, 식비를 아낄 수 있고,
2. 침대와 같은 기본적인 가구도 제공되므로, 이런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고작 일 년 살자고 침대며 식탁이며 온갖 가구를 갖추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3. 여자 둘이 사는 것보다는 한국인인 하숙집 주인 분과 함께 사는 것이 좀 더 안전할 거 같았다. 또 겪어본 것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좋으셔서 같이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Newton은 거리적으로 Boston과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Green D라인이 다녀서 오히려 학교 통학에는 더 편하다.
부모님과 살다가 처음으로 독립해서 해외에서 여자 둘이 살게 된 상황이고 보니, 한국의 양쪽 집 부모님들은 하숙이 더 좋다고 추천하기도 해서, 후배와 고민 끝에 하숙집에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