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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퀴리 Nov 12. 2020

증발

사라진 친구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증발을 택한 사람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홀린듯이 클릭하였다.


 기사를 읽기 전에는 증발이란 누군가에 의한 살인, 납치 또는 자살 등의 장기 미제사건이 된 일을, 그리고 그 미제사건의 피해자들이 `증발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증발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하여 모든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추는 현상을 뜻했다. 200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매년 많은 사람이 증발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하루아침에 잠적하는 이들의 수가 최근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증발의 이유는 다양하다. 우울감과 고독감에서 오는 삶의 회의, 가족 또는 주변 지인들과의 피곤한 관계에 지쳐서, 사업실패로 지게 된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 어떠한 계기로 얻게 된 수치심을 피하고자 등등.


 기사를 읽다 보니 친구 P가 떠올랐다. 증발현상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고, 가까운 곳에서 이미 발생했었다.


 원래 한 다리 건너 조금 어색한 상태로 알고 지냈던 P와는 코드가 워낙 잘 맞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많이 만났고 연락도 자주 했다. 영화나 소설 이야기를 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고, 인적 드문 공터에서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살면서 문화생활을 가장 깊이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친구였다. P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다. 아니, 단순히 취미라고 치부하기엔 수준급의 실력이었다. 그림 중에서도 특히 만화 그림체에 소질이 있었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일은 없지만, 독학으로 익힌 드럼, 기타 등의 악기도 곧잘 다루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본디 인간관계가 매우 좁고, 사회의 어떤 구성에 잘 소속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구성원이 되지 않아도 불편함이나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 때문에, 다른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 않았으며,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힘든 유형의 사람이었다.


 종종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P를 데리고 갔다. 밝은 성격도 아니고 사회성이 좋지 못한 P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특별한 P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동굴 안에 갇혀 지내는 P를 불러내어 세상과 조금씩 접속하게 시키고, 내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P의 얼굴에 그런 비슷한 활력이 도는 것 같고, 내가 P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창 그렇게 P와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다 취업을 하게 되었다.


 회사원이 된 후의 일상은 확실히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먼 출퇴근 거리와 30대에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의 적응으로 삶의 피로도는 급격히 증가했다. 친구들과의 연락이나 만남도 점점 줄었고, P와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씩 주말에 만나면, 회사에 다니지 않는 P와의 공감대가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곤 했다. 새벽에 비몽사몽 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콘크리트 벽의 사무실에서 온종일 모니터와 씨름하느라 나는 P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대화의 범위가 많이 줄었다. 대화 소재가 눈에 띄고 줄어들었음을 당시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취업 후 1년쯤 되는 때에, 나름 신입사원의 어리바리한 냄새가 꽤 빠졌다고 자부하던 어느 날, 약속을 잡기 위해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인하대 후문에 있는 바(Bar)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지하에 위치한 그 바는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록음악을 틀어주며 신청곡도 받아주는, 나와 P가  좋아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P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낮잠을 자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P는 부재중 전화가 있어도 다시 연락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나는 내일 다시 걸어보기로 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며칠 뒤, 그리고 몇 달 뒤 또 전화를 걸었다. P가 "여보세요?"하고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톡 메시지의 1 또한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였다. 카톡에 아직 존재하고 있음에 안도하며, `P가 아마 잠수를 타고 싶은 시기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조바심 갖지 않고 차분하게 한 번씩 꾸준히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연락 두절의 날들은 길어졌다. 혹시 P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P와 같은 동네에 거주하며 종종 우연히 마주치곤 했다는 지인에게 물어보았지만, 지난 1년여 동안은 전혀 마주친 일이 없다고 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은행나뭇잎 옆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던 늦가을, 명랑한 목소리의 안내멘트를 결국 듣고야 말았다. P의 번호가 없는 번호가 되어버렸다. 카톡 리스트에서도 P의 이름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SNS도 전혀 하지 않고, 친구조차 사귀지 않는 P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증발해버렸다.


 P가 증발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스스로의 우울감 때문일 수 있고, 외부에서 오는 피로함 또는 고단함이 원인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거기에 나의 지분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사회성이라는 메커니즘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 판단했을까. 그가 분명 불편함이 있음을 감지했어도, 그의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을 내 힘으로 고치려 하지 않았었나. 그가 변화하며 나의 위상이 높아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었나. 원래 마음의 동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곳에서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내보일 수 있었던 한 자아를 기어코 세상에 억지로 꺼내두어 세상에 전시했던 것은 아니었나.

 P를 P로서 존중하지 않고 그의 삶의 루틴을 나의 욕심으로 파괴한 것은 아닐까 진심으로 미안해진다.



구월동의 한 자그마한 바에서 마지막으로 P를 목격한 친구가 있다.


 길을 지나가던 중 우연히 창밖에서 P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P의 바로 옆자리에 착석했다. 그동안의 근황과 궁금했던 점을 이것저것 물어보았으나 P는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감정 없이 대답을 했고, 자기는 이런 어울림과 이런 상황이 싫으니 그냥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했다고 한다. 조금은 당황한 친구는 그 자리의 술값을 다 내고 인사를 한 뒤 가게를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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