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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퀴리 Apr 06. 2018

아무것도 없는 퇴근

 나는 보통 7시 정도에 퇴근을 한다. 일이 많거나 능력이 부족하여 업무가 밀리는 날은 물론 야근을 하기도 한다. 통근 거리가 가깝지는 않아, 집에 도착하면 오후 8시 30분에서 50분 사이가 된다. 그리고 보통 11시 30분 전에는 잠을 청한다. 그때를 넘기면 아침에 일어날 때, 누군가 가슴에 벤치프레스를 얹어 놓은 듯 몸을 일으키기 힘들다. 그런 아침을 맞이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퇴근 후 취침 전까지 2시간 남짓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가.


 미세먼지 농도가 낮고 몸 컨디션이 허락된다면 운동을 한다. 바람막이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동네의 적당한 달리기 코스로 향한다. 언젠가 야간 러닝이 아침 러닝보다 더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침보다 밤공기가 더 맑다고 했었나? 어쨌든 요즘은 아침 밤 할 것 없이 공기가 안 좋지만. 야간 달리기는 특별히 시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변에 가로등이 있다 해도 밤 길은 어둡다. 달리다 보면 길에 있는 이물질이나, 애완견을 미처 발견 못하고 충돌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눈은 작지만 달릴 때만큼은 다치지 않기 위해 부릅뜨곤 한다. 아, 주행 시에 뱃속이 출렁이지 않도록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운동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면, 독서를 한다. 평일 밤에는 교양이나 인문 서적보다는 문학이 잘 읽힌다. 인문 교양서적을 보면 아무리 부드럽고 쉬운 문체라 할지라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혼자 심각의 동굴로 빠지곤 한다. 휴식을 위한 평일 밤에 그런 수고를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소설 중에서도 고전문학보다는 현대 소설이 더 좋은 것 같다. 많은 양을 읽으려 욕심내지 않는다. 스탠드 앞에서 한 줄 두 줄 차분하게 읽어 내려간다. 방금 읽은 문장을 안주 삼아 와인이나 맥주를 한 모금마신다. 글과 술의 조합은 영화와 술의 조합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최근에는 신경숙의 소설을 다시 읽어 보았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매번 바르게(?) 하루를 정리하는 건 아니다. 친구들과 약속이라도 있는 날은 설사 월요일이라 할지라도 내일이 토요일인 것처럼 서로를 속이며 진탕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집으로 돌아와 양치질만 대충 하고 이불속으로 직행하여 쓰러진다. 정말이지 잠깐 눈 감은 것 같은데 출근 시간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어느샌가 들려온다.  


 솔직히 말해서, 퇴근 후 귀가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저녁 식사 후에 씻고 그저 야구 중계나 조금 보다가 잠들고 싶다. 밴드 얄개들이 '그래, 아무거도 하지 말자!'라고 외쳤던 것처럼 항상 딱 그 상태이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는 쫄보라 앞 날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있는 짓은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없는 퇴근 후 두 시간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으면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은 아니지만 , 일상의 권태기가 올 수 있기에 하루에 한 가지는 채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달리기, 독서, 친구들과의 술 한잔. 이 중 한 가지만 이루어도 그 날 하루는 꽉 찼다고 자부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헛개수를 사들고 출근하는 날은 조금 줄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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