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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Jul 05. 2020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0.5번째 북클럽

       이 리뷰가 0.5번째인 이유는 독서클럽 시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 회차이기 때문이다. J언니가 참여하기 전에 T와 H와 함께 정한 책이었다. 이 책은 밀리의 서재에 없기 때문에 따로 구매를 해서 봐야 했는데, 캐나다로 어렸을 때 넘어온 J언니는 한국은행계좌나 공인인증서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기에 이 책은 스킵했다. (밀리의 서재는 모바일 앱으로 하면 해외에서도 구글 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소소하게 T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내가 가장 와 닿았던 챕터 위주로 0.5번째 리뷰를 남기려 한다.


잘 살겠습니다

    "이 언니는 친하지도 않은 내 청첩장이 왜 그렇게 받고 싶은 걸까. 그렇다고 구제랑 친한 건 더더욱 아닌데. 주말에 결혼식 다니는 거 귀찮지도 않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빛나 언니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사실 나도 결혼하거든." 그러면 그렇지. 결국 이것 때문이었어? 언니가 나를 그렇게 까지 만나고 싶어 한 이유가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 느끼는 필연적인 막막함에 대해서라면.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난 사 개월간의 준비과정을 핵심만 압축적으로 전달했다."
    " 다음엔 언니가 커피 사요" 언니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아, 그래? 고마워"라고 말해다. 이쯤 되자 나는 이 언니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정말 몇천 원짜리 커피 한잔 얻어먹으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전자라면 너무 쪼잔했고 후자라고 해도 그 무신경함에 짜증이 났다.
    "언니는 결국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빛나 언니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 결혼식 날짜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았고, 신혼여행에 방해가 될까 봐 일부로 여태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이 너랑 나랑 밥 먹고 바로 다다음 날인가 그랬잖아. 나는 네가 그렇게 결혼식날 임박해서 청첩장을 줬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거야. 이건 또 무슨 구차한 궤변인지"

     - 장류진,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2019



    각 챕터별 다양한 캐릭터가 있는데 이 캐릭터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장르가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나는 장르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T의 말로는 작가의 가치관이 너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캐릭터의 발전 방향이 권선징악이라고 하는데, 듣고 보니 그런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주변에 있을법한 캐릭터의, 주변에 있을만한 해프닝들을 읽고 있으니 그저 남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었기에, 이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해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책에선 누구나 하나쯤의 애착 캐릭터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챕터는 객관적으로 읽어나가기도 하고, 어떤 챕터는 본인도 모르는 새에 자기를 투영해서, 본인의 경험담 또는 주변인들을 떠올리며 주인공의 심리에 무척이나 공감하며 읽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잘 살겠습니다]가 나에겐 그런 챕터였다. 주인공의 성격과 가치관은 나와 너무나 비슷했고, 주인공이 스트레스받아하는 인간관계인 빛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T는 그랬다. 빛나 그녀는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대부분 모든 사람들에겐 악의의 유무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이 악의를 가지지 않은 애매한 포지션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의도를 가진 자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어떻게 미워만 하랴. 생각해 보면 내가 제일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인간관계들은 항상 그렇게 애매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관계 속에서 주요한 고민은, 나는 얼마만큼의 애정과 호의를 보일 것인가 이다. 심지어 그 고민의 결정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할 때가 많았다.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군것인가, 더 잘해줬을 수도 있을 텐데 또는 그렇게 까지 잘해줄 관계는 아닌데 하는 후회가 몰려오면서 나를 죄책감에 힘들게 한다. 주인공이  빛나가 새벽에 찾은 따끈한 답례떡을 먹으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빛나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주인공의 결정은 만 이천 원이었다. 분명 돈이 없는 사람이라 마음이 팍팍해서 내린 결정은 아닐 것이다. 더더욱이 결혼식 한 번의 해프닝에서만 오는 계산법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들의 계산(밥값, 커피값, 선물 등등)들이 한 가지로만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로 적립되면서, 상대방도 내가 느낀 감정들을 알아봤으면, 그러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 정해진 오기의 정가인 것이다. 그녀가 만 이천 원을 위해 굳이 천 원짜리 카드를 채우는 것도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과연 빛나는 주인공의 의도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런 의미를 알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둘의 관계는 좀 더 호전적이었을 거 같은데. 역시나, 주인공의 만 이천 원짜리 결혼 선물에 돌아온 반응은 감동이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너무나 다른 감정적인 반응에, 주인공은 머쓱해졌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본인이 과잉 반응을 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을 거 같다. 심지어 프로필 사진에 올라간 본인의 선물을 보면서, 주인공이 빛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빛나가 주인공에게 느끼는 비대칭적인 감정으로부터 오는 부담감도 느꼈으리라.


    나를 또 불편하게 했던 것은 남녀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명의 동기들 구재, 빛나 그리고 주인공이 동시에 입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하는 부서, 층수 심지어 연봉까지도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이런저런 요소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꾸려져 있어서 문학적 소설이라기 보단, 한 순간을 찰나로 담아낸 사진 같았다. 이러한 현실적 장치들은 꾸준히 다른 챕터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낸다. 아마도 요즘 시대에 가장 사람들이 인지하고 문제 삼는 주제라 그것이 더 보이는 건지, 작가가 의도해 그런 건지 아니면 그것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 그런 건지 나는 객관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이 책은 이 챕터 이외에도 다수의 챕터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잘 살겠습니다' 한 챕터를 가지고 이리도 길게 내 생각을 적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아마도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 캐나다로 오면서 나의 인간관계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한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 새로 자리 잡은 캐나다에서의 관계. 둘 다 다른 방향으로 어렵다. 아무렴 20년이 넘게 한국에서 살았기에, 언어와 정서적으로의 장벽이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동시에 또한 한국에 살지 않은지 5년이 되어가기에, 그동안의 가치관과 성격의 변화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종종 어디서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의 관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장점(?)과 함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거 같아 외로움(?)을 느끼며. 그래도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보면서 공감하고 위로 받는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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