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장 표현력이 산뜻하고 신선하고 와 닿는다.
나도 나이가 드는 건지 묘사되는 상황들이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다. 학생 때 책을 읽을 때면 그냥 다른 사람의 옛날 얘기라는 생각뿐이 안 들었는데, 요즘엔 작가의 옛날이야기가 나의 옛날이야기이기도 하다. 점점 2개 국어 아닌 2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점에서, 어떤 언어로든 나의 생각을 와 닿게 묘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아 가고 있는데, 이처럼 본인의 생각을 진부하지 않고 유쾌하고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특히 <여름의 속셈>은 몽글몽글한 표현들도 많고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문장들도 많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이 천장에서 총총 빛났다.' <야간비행>
'겨울이란 말을 혀끝으로 만져본다' <초겨울>
'그러고 보면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지는 모양이다' <여름의 속셈>
'이들은 일단 소설에 등장한 이상 종이 위에서 꾸준히 맥박 소리를 내며 사람답게 군다'. <말 주변에서, 말주변 찾기>
'어떤 문장에는 꽃술 위 꽃가루마냥 시공이 묻어난다. 글쓴이가 원고를 꾸리는 동안 맡은 냄새, 들은 소리, 만난 사람, 겪은 계절이 알게 모르게 베어난다' <문장 영향권>
'평소에 문장에 줄을 많이 긋는다......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점 선 면 겹>
2. 독특한 서술 구조
자잘하게 이루어진 부제목들 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름들이 담겨 있다.
@ '그동안 저를 스쳐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 <작가의 말>
@ '각각의 내용은 독립된 문단을 이루며 병렬로 이어진다' <두근두근 산해경>
<연호 관념 사전> - 연관성 없는 의식의 흐름대로 자음에 따라 단어를 뱉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내가 아는 익숙한 에세이와 달라서 아트적이기 까지 하다. 근데 또 한편으론 책을 이렇게 날로 써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잊기 좋은 이름> - 나름의 정열로 노트 1,2,3,4 순차적으로 흘러간다.
3. 문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지독하다.
항상 여러 분야에 얕게 관심을 두는 나로서, 이렇게 한 가지 (문학)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쏟는 작가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문장 영향권> 챕터는 시 낭독에 대한 보답으로 합창단의 합주로 문학이 글로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 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점 선 면 겹>
'아버지가 일기를 쓰며 문학이 번식에 도움된다는 걸 의식했을 리 만무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고 그 처음이 있어 나와 내 쌍둥이 언니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나의 기원, 그의 연애>
'대체 말이 뭐기에, 사람 맘을 이리도 송두리째 흔들고, 것도 모자라 무너지게 하는 걸까요'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4. 하지만, 찰기가 부족하다.
스파게티 면처럼 뚝뚝 끊기는 기분. 흐름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잠들기 전 밤에 10분씩 읽기 좋은 책. 짧은 내용 안에 많은 생각이 ZIP 파일처럼 압축되어 사색에 잠기기 좋은 책.
<첫 번째 독서모임 후기> - 읽을 땐 별로였지만, 이야기하면서 좋아졌던 책.
기억. 나도 모르는 남들이 가진 나에 대한 기억. 점점 잊혀져 가는 기억. 떠나가는 기억을 어찌하면 붙잡을 수 있을까. 작가처럼 자신에 대한 기억을 알게 된다면 나는 가슴이 뭉클해질 거 같다.
공감. 각자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나에겐 너무나도 공감이 갔던 책이,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특히나 우리 독서모임은 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그들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삶의 경험이 있다. 이런 점들이 이 독서모임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가짜 공통점. (T는 과거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가짜 공통점으로부터 온 상처를, H는 사회생활에서 오는 가짜 공통점의 필요성을 느낀 경험을, 나는 친구관계에서의 가짜 공통점의 질림을 이야기했고, J는 그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월호.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학생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들의 이해관계에 이용되고, 다들 변질되었다 하지만. 세월호 자체가 변질된 것은 아니다. 세월호의 침몰, 어린 학생들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 한 우리는 '꾸준히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문학.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아, 나의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끝자락으로 밀려있던 분야. 물론 책을 읽음으로써 문학을 접하지만, 번뇌해 보진 않았던 주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지. 아니 어떻게 하면 문장을 잘 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