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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Feb 13. 2024

슬스팀의 작년 그리고 새해

슬스레터 #22

1월이 끝나버렸다. 새해를 맞으며 세웠던 계획 중 작심삼일로 끝난 일들이 많다.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음력 1월 1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 설날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으며 슬스팀의 프로젝트를 되돌아보았다.


사실 슬스팀이 모이게 된 계기는 '초크백 제작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갖춘 유니크한 초크백을 만들고 싶었다. 호기롭게 시장조사도 하고 레퍼런스도 잔뜩 아카이빙 했지만 맘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제품을 직접 제작해 본 경험이 없는데 처음부터 초크백을 만들려니 너무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가방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과 각종 원단 및 부자재가 정말 많았고, 알맞은 제작 업체를 찾고 컨택하는 일까지 전부 낯설고 어려웠다.


루트 파인딩 없이도 일단 붙어보면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붙어보니 도저히 리치가 안 닿는 느낌이랄까. 더욱이 다들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꼼꼼하게 챙길 물리적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팀 이름을 슬로우스타터라고 지어서 일의 진척이 느린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조직의 결속력이 지나치게 느슨해지는 문제가 생겼다. 원래부터 느슨하게 오래 굴러가는 팀을 만들고 싶어서 이름을 '슬로우스타터'라고 지었지만,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느슨했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다시금 텐션을 줄 수 있을까? 떠오른 방법은 딱 하나.



잘하는 일부터 하자!


지금 하는 일이 어렵다면 잘하는 일부터 하나씩 도전하는 게 맞았다. 우리가 잘하는 일이 뭐지?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른 게 뉴스레터였다. 당시 팀원 3명 중 2명이 문예창작과 출신, 남은 1명도 광고기획자여서 뉴스레터 마케팅이야말로 우리가 잘하는 일의 교집합이었다. 게다가 뉴스레터는 오늘 바로 시작해도 될 만큼 간단한 프로젝트였다. 일단 시작해! 바로 아이템을 구성하고 구독자를 모집하고 레터를 발송했다. 첫 슬스레터의 구독자는 팀원을 제외하고 고작 9명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초기 구독자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에세이로만 시작했다가 [벽 타는 사람들]처럼 정규 코너도 생기면서 미약하고 더디지만 차츰 구독자가 쌓였다. 우리 마음에도 살짝 '초크백'에 대한 부채감이 쌓여갔다. 하고 싶고, 언젠간 하긴 할 건데... 제작하기 더 쉬운 상품으로 우리를 테스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정말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능력이 되는지, 무엇보다 그만한 열정과 의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뉴스레터 만큼이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티셔츠였다!


이때부터 전문 디자이너의 필요성을 느끼고 '노새'를 영입했다. 디자이너까지 있는 완벽한 팀이 꾸려졌지만 티셔츠 제작을 슬스레터처럼 순식간에 진행할 수는 없었다. 사용하고 싶은 원단이 따로 있어서 온오프라인으로 손품과 발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과 체력의 부족이라는 늪에 다시 빠졌다. 퇴사하고 제대로 시작해? 하지만 회사 일도 잘하고 싶은데?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서 힘겹게 두 개를 끌고 나갔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슬스팀의 첫 티셔츠 시리즈 '캣치미' 구경하기>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하자!


우리는 슬스레터 발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점차 나아지는 성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완벽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의를 두려고 이름을 슬로우스타터로 지어놓고 헛발질을 해댄 꼴이었다. 팀 이름처럼 '우리답게' 해 보자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슬스레터를 만들 때의 '일단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바뀐 건 마음가짐뿐인데 이전보다 일의 진행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물론 첫 상품인 '캣치미'를 공개하기까지도 무척 긴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판매를 시작했으니까! 상품 제작을 어렵게만 생각했던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완제품을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팔리면 더욱 큰 의미가 있겠고.




단팥이 입은 치즈태비 캣치미(좌)와 시느가 입은 기본 캣치미(우)


당연한 말이겠지만 어찌저찌 만든 제품을 세상에 내놓고 보니 아쉬운 점도 많다. 초기의 원대한 야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게 됐고 소재, 색상 등 여러 요소에 원하는 바를 다 반영하지도 못했다. 아마 캣치미는 여러 버전을 거치면서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지 않을까 싶다. 최초에 구상했던 원단과 디자인, 판매 방식을 하나씩 적용할 예정이라 몇 단계의 버전이 있을지 우리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첫술에 배불러지려고 하지 말고 오래도록 많이 먹자는 주의다.


아무튼 2024년에도 우리는 '포기만 안 하면 무슨 일이든 마침내 해낼 수 있다'는 태도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벌여볼 예정이다. 숙원사업이 된 초크백도 언젠가 반드시 다시 도전할 것! 슬스팀 사전에 중도 포기란 없다. 느리지만 마침내 해낼 테니 모두 느긋하고 오래도록 슬스팀을 지켜봐 주시길 바라면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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