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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Mar 12. 2024

자연 바위를 여행하는 클라이머를 위한 안내서

슬스레터 #25

한낮 기온이 10도 가까이 오르며 날이 부쩍 따뜻해졌어요. 벌써 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3월이더라고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봄은 부지런히 다가오고 있었나 봐요. 날이 더 따뜻해지면 춥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야외활동을 하고 싶어요. 자연 볼더링도 그중 하나인데요. 혹시 여러분도 올봄 자연 볼더링을 할 계획이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주목해 주세요! 오늘은 자연 볼더링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OHO(오호)팀을 만나고 왔어요.



ⓒOHO


안녕하세요! OHO는 어떤 팀인지 소개해 주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OHO팀은 모든 클라이머가 더 즐겁게 운동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뭉친 팀이에요. 저는 팀에서 자연 볼더링 가이드북 제작을 맡고 있는 최가람이라고 해요.


OHO팀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소셜 미디어 홍보도 활발히 하지 않는 편이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최근 와디즈에서 자연 볼더링 가이드북 '클동여지도' 펀딩을 오픈했어요. 지금은 클동여지도 제작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재미있는 콘텐츠와 이벤트를 기획해 선보일 예정이에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슬스팀도 웹서핑 중에 우연히 클동여지도를 발견하고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사실 거창한 계기는 없어요. 2021년에 실내 볼더링을 통해 클라이밍 세계에 눈을 뜬 후 암장 선배님들을 따라서 자연에 몇 번 나가봤어요. 자연 볼더링이 참 재미있는데,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렵고 애초에 잘 정리된 자료도 없으니까 혼자서는 못 가겠더라고요.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제가 보기 쉬운 저만의 가이드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요. 점점 일이 커지면서 아예 책으로 예쁘게 만들어 판매까지 하게 됐어요. 클동여지도 시리즈 첫 번째 책인 '모락산 편'은 이미 출시됐고, 두 번째 ‘불암산 편’은 이달 29일까지 펀딩 중이에요.



클동여지도 모락산 계원예대 볼더링 가이드북 ⓒOHO


시작이 제일 쉬웠어요


클동여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첫 단계는 문제 수집이에요. 유명한 루트는 금방 찾을 수 있는데 옛날에 만들어진 문제는 정보가 아주 부족해요. 직접 문제를 만드신 선배님들이 아니면 루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인터넷에 검색하고, 직접 가보고, 문제를 개척하신 분들을 또 찾아다녀요. 그러면 숨겨진 문제가 많이 나와요.


두 번째 단계는 답사예요. 모락산 편을 만들 때는 20번 넘게 간 것 같아요. 문제별로 사진도 찍고 루트도 직접 확인했어요.


세 번째 단계는 구성이에요. 현장 답사를 한 후에야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거든요. 어떻게 섹터를 나누고 문제를 배치할지, 바위 이름은 어떻게 부를지 하나하나 체크해요.


마지막으로 표지나 전체적인 디자인을 하고, 계속 수정을 반복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완성돼 있더라고요.



그 모든 과정을 팀원들과 함께 추진하신 거예요?


어쩌다 보니 저 혼자 진행했어요. OHO팀은 저를 포함해서 3명인데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거든요. 서로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를 맡아 프로젝트를 '따로 또 같이' 진행하는 중이에요. 클동여지도 제작, 굿즈 기획, 디자인 등 각자 역할이 달라요.



앗, 가이드북을 혼자 제작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크게 고민하기보다 바로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는 편이라서 즐겁게 했어요. 그리고 본업이 건축 설계 쪽이어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했고요. 물론 막상 시작해 보니 제 생각과 다르긴 했지만요.



어떤 측면에서 설계와 지도 제작이 다르다고 느꼈나요?


본업에서 도면도 그리고 했으니까 지도도 뚝딱뚝딱 만들면 될 줄 알았거든요. (웃음) 근데 장르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설계 도면은 선만 그으면 됐는데 지도는 그림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달랐죠. 다른 클라이머들도 보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디자인도 들어가야 하고… 시작은 쉽게 했지만 과정은 그렇지 못했어요.



모락산 바위 위치를 약도로 표현한 클동여지도 ⓒOHO


모든 클라이머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다른 가이드북은 없었나요?


아, 무척 옛날 것들이 있기는 했어요. 진안이나 무등산처럼 볼더링으로 유명한 지역들에는 가이드북이 잘 돼 있는 편이에요. 거기서 표현하는 방식이나 루트를 지도로 구현하는 방법 등을 참고했죠. 하지만 옛날 가이드북은 살짝 올드해요. 예를 들면 일러스트도 없고, 사진도 너무 진지해요. 그런 것들을 보고 나니까 더 재미있는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솔직히 그레이드가 v10 ,v13 이렇게 높은 분들한테는 가이드북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그분들한테는 일종의 소장용이라서 내용이 딱딱하고 재미없어도 돼요. 오히려 저랑 비슷한 레벨이거나 자연 볼더링을 처음 접하는 분들한테 가이드북이 필요하죠. 그런 사람들이 바위의 즐거움을 알려면 일단 가이드북부터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쩐지 클동여지도 표지부터 귀엽고 친근하던데, 기획 단계에서부터 의도하셨나 봐요.


네! 펼쳐 보고 싶은 책 표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자리를 빌려 표지를 디자인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요. 사실 전체적인 기획과 구성은 제가 했지만, 부족한 다른 부분들은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인쇄, 제본도 제가 몰랐던 분야인데 아는 분이 도와주셔서 걱정 없이 해결했죠.



그럼, 이번에 펀딩을 오픈한 불암산 편의 인쇄도 그분이 맡아 주시나요?


아, 인쇄 자체는 그대로 하긴 할 건데, 저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한두 편만 만들고 끝낼 일이 아니니까요. 조금 부끄럽지만, 모락산 편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인쇄 분야는 아무것도 몰라서 파워포인트로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출판하려면 전문 프로그램을 써야 하더라고요. 1편은 어찌저찌 도움을 받아 해결했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디자인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하신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파워포인트 실력이 프로인데요?


(웃음) 정말 힘들었어요. 파워포인트로 만든 이미지를 전문가분이 출판 레이아웃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으로 다시 잡아주는 이중 작업을 했거든요. 지금은 제가 직접 인디자인을 배우는 중이에요. 배우는 과정은 어렵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면 후속편은 작업하기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요? 작업 시간도 확 줄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모락산 편은 4개월 걸렸거든요.



모락산 바위 루트를 시각화한 클동여지도 ⓒOHO


스트레스라는 도파민에 중독됐어요


작업하시면서 디자인처럼 기술적인 부분 외에 더 신경 쓴 포인트가 있을까요?


루트 가독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초보들이 봐도 루트를 이해하기 편하고 한눈에 보기 쉽게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누구나 자유롭게 루트를 찾아다닐 수 있도록요.


또 등반 포인트까지 진입하는 방법인 '어프로치'도 무척 신경 썼어요. 친구들과 함께 모락산에 갔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어프로치를 몰라서 정상까지 찍고 온 일화가 있어요. 그때 '어프로치도 꼼꼼하게 설명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출간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한데, 모쪼록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루트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20번 넘게 모락산을 방문하셨다고 했잖아요. 힘들거나 스트레스받지는 않으셨나요?


해결되지 않는 루트를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였어요. 성격이 급해서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밤에 잠이 안 올 정도거든요. 결국 휴가까지 내고 바로 모락산으로 달려갔어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까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클동여지도를 작업하며 스무 번 넘게 갔던 모락산 ⓒOHO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가 동기를 주는 촉진제인 셈이네요?


네, 제 몸이나 뇌에는 안 좋겠지만 스트레스받는 만큼 일이 추진력을 얻는다고 보면 돼요. 스트레스 주는 문제를 해결했을 때 도파민이 도나 봐요. 마치 안 풀리던 클라이밍 문제를 풀었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요.



이렇게 힘들게 만드셨는데, 클동여지도를 받아보는 독자분들이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포인트도 있나요?


그냥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클동여지도 보고 나서 '자연 바위도 재미있잖아?' 싶은 마음이 들고 그렇게 바위를 직접 찾아가게 됐으면 해요. 살짝 과장을 보태 표현하면, 실내 암장에 있는 모든 클라이머를 자연에서 만나고 싶어요.



자연 볼더링은 왠지 위험할 것 같은 편견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클라이머도 있을 듯해요.


자연 바위가 실내 볼더링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실내에서 코디네이션 무브를 할 때 매트가 좁아서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다른 홀드와의 거리가 너무 좁아서 홀드에 부딪히잖아요? 바위에는 나의 무브를 방해하는 홀드가 없어요. 오직 내 루트가 있을 뿐이죠. 그리고 진행 방향에 맞게 패드를 직접 깔면서 스스로 안전을 체크할 수 있고요. 등반자를 지켜보고 계속 신경 써주는 스파터(Spotter)도 있고요.


그동안 무서워서 실내에만 있었다면 올봄에는 한번 가까운 자연으로 나가보세요.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무등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 분위기 ⓒOHO


자연의 끝없는 매력에 사로잡혔어요


지금까지 자연 볼더링의 매력을 많이 어필해 주셨는데요. 가람 님이 추천하는 스팟이 있을까요?


한 곳만 콕 집어서 말씀드려야 하나요? 매력적인 곳이 정말 많아서 선정하기 어려운데요. 딱 두 군데만 추천해 드릴게요. 첫 번째는 '무등산'이에요. 공식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자연 볼더링의 성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시스템도 잘 돼 있고, 매년 볼더링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해요. 짙은 황토색 바위에 이끼가 깔려 있는데 분위기가 해외 느낌이에요. 바위도 엄청나게 커서 등반자를 압도하고요.



결이 예쁜 불암산 바위 ⓒOHO


두 번째는 이번에 클동여지도로 만나볼 수 있는 '불암산'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바위가 있는 산이기도 한데요.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무등산과는 또 다른 매력이에요. 바위 결이 예쁘다고 해야 하나?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와요. 요즘 인증이 필수인 시대니까 많은 분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오늘 정말 알찬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가람 님과 OHO팀의 행보가 궁금해요.


불암산 편 이후에도 가이드북을 계속해서 만들 예정이에요. 북한산, 관악산, 심학산 등등 일단 수도권 이주로 작업하려고 해요. 종종 양양이나 부산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있는데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오가야 해서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클라이밍의 또 다른 재미를 발굴할 수 있는 이벤트도 준비 중이에요. 클동여지도를 구매해 주신 분들과 함께 불암산에 간다거나, 지역 암장과 협업해서 모락산에 가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이것저것 기획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가람 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무엇인가요?


끝없는 도전인 것 같아요. 특히 자연 바위에는 수없이 많은 패턴이 있거든요. 실내에서는 홀드 종류가 정해져 있다 보니 한계가 존재하는데 바위는 한계가 없어요. 볼더링을 하다 보면 정말 이상한 홀드들이 많아요. 덕분에 꾸준히 새로운 무브를 경험하고 도전할 수 있죠. 오늘은 이 바위를 점령하고, 내일은 또 다른 바위를, 안 되면 계속해서 도전하는 과정이 쾌감을 줘요. 언제나 도전할 수 있도록 바위는 항상 그 자리에 있기도 하고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과 '끝없는 도전'이 주는 즐거움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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