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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Dec 16. 2024

딥마인드

나를 만나는 시간

인간은 다른 이들의 욕망을 욕망한다.

                                                             - 르네 지라르 -


4주 동안의 오제이티 후 담당부서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출근 후 회의실에 모여 같은 팀 발령자 4명이 각자 가고 싶은 담당 파트를 말하는 자리를 가졌고, 헤드님들과 팀장님이 최종 결정하여 퇴근 전까지 다시 회의실로 모이기로 했다.


“오늘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셔도 좋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볼일을 보셔도 괜찮아요. 4시 30분에 여기서 뵙겠습니다. “


경력이 꽉 차고도 넘치는 발령자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돌아보는 4주간의 오제이티는 신입사원들과는 다른 입장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임을 배려해 주신 팀장님 덕분으로, 오전 회의 이후로는 자유시간을 얻었다.


자유시간이라… 어디를 가면 좋을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오제이티 기간 동안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두 곳을 찾아두었기에 결정이 쉬웠다. 그날은 도서관 대신 성당으로 추운 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본당에는 미사가 없는 시간이었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뭔가 절실하게 기도하기보다는 조용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의 결정을 되돌아봤다.

업무적인 내용, 나의 경력과 조금이라도 연관되는지, 미래를 고려했을 때 어떤 직무가 더 도움이 될 것인지 등을 계산해 본다는 것은 이미 벗어난 길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에 희망한 곳과 다른 파트로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것은 아니었다.  

담당부서의 분위기와 근무 환경 자체가 각기 너무 달랐기 때문에, 최대한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고 근무 환경이 좀 더 나은지를 고려하여 내 의사를 표했는데, 오제이티를 함께 받은 4명 모두, 같은 순위로 같은 담당을 꼽았기 때문에 결정은 상사들의 몫으로 돌아가 있었다.


성당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멍한 듯 아닌 듯 한참을 앉아있다가 기도를 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던 단단한 마음과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따뜻함을 주십사 기도했다.

가족의 안녕과 각자가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사 기도했다.


밖으로 나와 마음이 이끄는 데로  성당 주변을 거닐었다.

성당 부속 건물로 발걸음이 갔다.

맛있는 빵집과 카페, 성물샵에서 활력를 느끼며 서점으로 들어갔다.

한강작가의 책뿐만 아니라 이전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전부터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온라인에서 받을 수 있는 할인 혜택은 오늘 만큼은 잊자며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로 기분 좋게 책을 사서 카페로 갔다. 책장을 넘기며 따뜻한 에티오피아 드립커피가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아티스트데이트 같았던 혼자만의 시간을 찐하게 보내고,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회의실로 돌아갔다.


팀장님을 기다리는 동안 각자 뭐 하다 왔는지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두 명은 그냥 사무실에서 놀았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자격증을 공부하고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풍족감으로 끌어올렸던 나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

자격증!!!

그 자격증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불안해지며, 잘 놀다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내가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혼자만의 시간이라니 배가 불렀구나…



누구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나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자격증으로 미래가 준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내가 준비해야 하는 미래인지에 대한 확인이 없는 것일 게다.

그동안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고, 그 가치를 간과하고 있었는데  발령받은 시설팀은 모두들 자격증에 크게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 참이었다.

이참에 자격증을 따면 노후에도 걱정 없다는 말로 모두들 격려를 해주는 환경 속에 있었다.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 바뀐 것이 그제야 실감 났다.

 

나의 불안은 주변의 욕망에 흔들리는 스스로에게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한 수용도 아직 하지 못했는데,

미래에 대한 방향을 주변의 욕망에 맞춰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현타가 왔던 것이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다른 사람의 욕망이 아닌 내 안의 딥마인드와 만나기 위해 글을 쓴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 주라고,

펑펑 울어도 된다고, 꾸역꾸역 참으며 괜찮은 척 넘어가지 말라고 영혼의 친구가 말해주었다.

눈물이 흘렀다. 조금의 눈물에도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내가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


멋져요!
도전하는 모습이 멋져요!


더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다 떠오른 말들이다.

인정받는 이 말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은 팀에서 벗어나, 잘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답답한 곳에서 탈출해서,

더 밝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멋져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누가 봐도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왜 보이기 싫었을까?

스스로 내 커리어는 실패했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그 어려운 상황을 뚫고 가는 것 같더니 '결국 실패했구나'라고 수군거릴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사실도 아닌 상황을 만들어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 결국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너는 멋있지 않아!라고....

네가 제대로 할리가 없지!라고...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꿈만 꾸는구나!라고...  

내 안에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뜨겁게 흐른다.


Surrender

내 안의 나에게 항복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24 살아야 할 이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지금 이 시기에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


해답과 책임, 두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의 의미에 대해 질문받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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